말씀&기도
신앙생활 FAQ

성령을 받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②

◈ 더 이상 논쟁하지 말라
얼마 전 나는 아내와 함께 유럽 여행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아내와 심하게 의견이 대립되었다.
나는 그녀에게 매우 화가 났다.
왜냐하면 그녀가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마침 우리는 기차를 탈 예정이었기 때문에 나는 속으로 “침대 열차에서 독방을 얻게 되면, 아내의 잘못된 생각을 완전히 고쳐주겠다”고 생각했다.

호텔에서 퇴실 수속을 하기 위해 승강기를 타고 내려오는 중에 나는 성령님이 내게 “아내와 더 이상 논쟁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느꼈다.
성령님의 말씀은 너무나 분명했다.
나는 짜증이 났다.
마음속으로 성령님께 내 주장을 펴려고 했지만, 그분은 “안 돼.
쓸데없는 짓 하지 마.
시간 낭비야”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말씀에 따라 나는 더 이상 아내와 논쟁하지 않았다.

그때 문제의 해결은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찾아왔다.
우리는 기차에서 독방을 얻게 되었다.
나는 우리의 논쟁거리에 대해 아내에게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아내는 우리의 아이들 중 한 아이의 문제를 위해 기도하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함께 열심히 기도했다.
두세 시간 후에 기차에서 내릴 때 호텔에서 내 마음을 무겁게 했던 아내와의 문제는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그것은 더 이상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성령님은 우리가 우리의 아이를 위해 기도하기를 원하셨다.
나는 아내의 잘못을 고쳐주겠다는 육신적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내가 그런 육신적 욕구를 거부했을 때 성령님은 활동하셨다.
그분이 나의 주인이 되셔서 주도권을 취하시자 문제가 자연히 해결되었다.
그분이 상황을 주장하시도록 하려면 우리가 육신의 욕구를 거부해야 한다.
육신에게 “노”(No)라고 말할 때 우리는 성령님이 어떻게 행하실 것인지를 정확히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그분께 길을 열어드리면 그분은 나중에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실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인주의적 태도를 갖고 살아간다.
나름대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지만 무엇보다도 자신들을 고독한 개인으로 여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달라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고독한 삶에서 관계적 연합의 삶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런 연합의 삶은 날마다 깊어져야 한다.
날마다 우리는 우리 안의 그리스도의 임재를 더욱 깊이 느껴야 한다.
이렇게 되려면 날마다 육신을 거부하고 성령님을 따라야 한다.

◈ 전진할 때와 머물 때
때때로 성령님은 “나는 네가 지금 쉬기를 원한다.
지금은 네가 무엇을 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신다.
성령님이 원하시는 것이 우리의 휴식이라면 휴식은 신앙의 완벽한 표현이 된다.
그러나 때때로 성령님은 “너는 이제 충분히 쉬었다.
이제는 일어나 전진할 때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를 통과할 때 구름 기둥이 그들을 인도했다.
어떤 때에는 구름 기둥이 그들을 휴식으로 인도했고, 또 어떤 때에는 그들을 전진하게 했다.
그들은 구름 기둥의 인도를 받기 위해서 늘 그것을 바라보아야 했다.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하여 말하자면, 우리는 늘 성령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분이 언제 우리에게 전진하라고 하시는지, 언제 우리에게 진을 치라고 말씀하시는지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늘 그분의 인도에 민감해야 한다.

- 래리 크리스텐슨, 기독교 교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