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기도
신앙생활 FAQ

예배의 구체적인 요소들은?

나의 한 친구는 약간 특이한 프로그램에 관여하여 일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피서지에서 사람들이 신학에 대해 논의하고 자기들의 신앙을 간증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내가 그 친구에게 “어쩐 일로 그런 프로그램에 관여하게 되었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아, 나는 단지 세속적인 곳에서 하나님을 높이고 싶었을 뿐이야”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의 말 속에서 예배의 한 요소를 발견했다.
하나님을 높이는 것! 이것이 바로 예배이다.

우리가 예배를 통해 그분을 높이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그분의 메시지에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예배하는 신자만 할 수 있는 일 예배는 개인의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다양한 그룹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나누는 공동의 행위이다.
만일 예배를 위한 시간과 공간을 정해놓지 않으면, 예배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주일 아침 10시, 수요일 저녁 7시, 매일 3번 식사할 때 등 이런 식으로 정해놓지 않으면 예배가 없어질 것이다.

큰 기쁨이나 큰 슬픔이 닥쳤을 때,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이 찾아왔을 때, 우리가 수고롭게 시간을 내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더욱 강하게 느끼지 않는다면, 예배는 사라질 것이다.

추수감사절에 ‘양식’에 대해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양식을 ‘주신 분’에게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예배하는 신자’뿐이다.

예배의 기초석은 ‘찬양’이다.
찬양이 있기 때문에 교회는 이 세상의 어떤 다른 단체나 조직과 구별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정의를 위해 힘쓰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누구나 세상의 예술과 철학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회보를 발간하고 위원회에 참석하고 운동경기에 출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리스도인뿐이다.

예배의 또 다른 필수적 요소는 ‘설교’이다.
물론 설교 없이 진행되는 저녁 기도회 같은 것이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예배라 하면 설교가 빠질 수 없다.
설교자가 나와서 성경을 읽고 설교 본문의 의미를 회중에게 설명해주는 설교가 예배의 필수 요소이다.
예배의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공동의 식사’이다.

이것을 주의 만찬, 성찬 또는 영성체 중 무엇이라고 부르든 간에 이 공동의 식사는 매우 중요하다.
이 공동의 식사 때에 하나님은 특별한 방법으로 임재하시고, 우리는 그분의 임재에 반응한다.
이것은 우리와 그리스도 사이의 언약의 확증이다.

독일의 저명한 신학자 로마노 과르디니(Romano Guardini, 1885∼1968.
가톨릭의 대주교 및 신학자)는 “예배는 어리석은 짓 같지만 사실 중요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비유를 들어보자.
하루 세 끼 식사에서 취할 수 있는 모든 영양을 알약 한 알로 압축하여 담을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이 알약 한 알로써 생존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 끼 식사를 차려먹는 것이 귀찮다고 해서 알약 한 알만 먹으면서 사는 사람이 있는가?
쌀, 쇠고기, 연어, 옥수수, 초콜릿 등을 먹고 생존하지 않겠는가?

예배도 마찬가지이다.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여 식욕을 자극하는 식탁을 차리면, 식생활이 향상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향상된다.

물론 내가 자전거를 타거나 골프 코스를 돌고 있을 때에도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실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일상생활 속에서 그분과 대화를 나누며 동행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따로 시간을 내어 예배를 드리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예배는 그분이 우리의 일상적 활동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 분이심을 우리의 행동으로써 표현하는 것이다.
예배 시간에는 복사기도 멈추고, 우리의 강박적 축재 본능도 수그러든다.
예배 장소는 “이 우주에는 어리석은 짓 같지만 사실 중요한 것들이 많다.
인간관계를 단지 현실적인 계산으로만 따져서는 안 된다”라는 말이 통하는 장소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일상적인 시각에서 모든 것들을 바라보고 해석하지만, 예배 중에는 그것에서 벗어나 거룩한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다.
예배 중에 우리는 과거의 신앙의 위인들이 싸워서 이룬 승리에 동참할 수 있다.
예배는 일상적인 관점에서는 무의미해 보이지만, 영원의 관점에서는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예배의 다양한 모습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속된 세계에서 거룩한 세계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런 일은 대형 교회, 작은 교회, 우리의 거실 또는 수련회의 캠프파이어 둘레에서 일어날 수 있다.

어디에서 모이든, 어떤 방식으로 예배를 드리든 상관없이 예배는 우리에게 새로운 6일 동안 승리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예배 중에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 집중한다.

니카라과(Nicaragua.중앙 아메리카의 공화국)에서 인디언 모라비아 교도들이 모이든, 아프리카에서 영국성공회 신자들이 예배하든, 미국에서 근본주의자들이 찬양을 하든, 예배의 중심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예배의 강조점이 바뀌어왔다.
2세기부터 16세기까지의 예배의 특징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찾으라면 성례전, 성직자 중심주의, 희생, 성물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의 예배를 상상하면, 어두컴컴한 장소에서 성직자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손동작과 몸놀림을 떠올릴 수 있다.
지난 몇 세기의 예배는 민주적인 특징을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우선 설교단이 회중의 좌석들로 에워싸인다.
그리고 예배의 진행자들과 회중이 서로 마주보게 된다.

중세에는 오직 성직자들만이 예배의 진행자들이었지만, 종교개혁 이후에는 평신도들의 역할이 커졌다.
중세의 예배에서는 성찬용 떡이 사람들의 종교적 상상력을 자극했고, 거대한 성당의 높은 종탑이 신앙심을 고취시켰다.

하지만 그 후에는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서도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임재를 체험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 마틴 마티, 기독교 교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