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기도
신앙생활 FAQ

나의 기도가 세상의 지도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우리는 정치 지도자들과 정부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할 때 해결할 수 없는 역설에 직면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이 인간의 자유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가에 대한 해묵은 딜레마이다.
모든 것을 아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이 일어나는 모든 일을 주관하신다면 기도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사건들이 한 치의 오차 없이 예정대로 전개되는데 기도가 무슨 차이를 낳겠는가?
이 문제를 이론적으로 어떻게 해결하려 하든 간에, 성경이 기도가 차이를 낳는다고 본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옛말에 있듯이 “기도는 능력이거나 우스운 짓이거나 둘 중 하나이다.”
성경은 기도를 우스운 짓으로 보지 않는다.
성경은 오히려 기도를 의가 승리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강력한 힘이요 없어서는 안 될 요소로 본다.
기도는 세상의 지도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기도하라.
그러면 기도하지 않았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기도가 일어날 일을 바꿔놓기 때문이 아니라 역사를 미리 내다보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사건들이 일어나는 데 한 부분을 담당하는 요소가 되게 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컴퓨터를 비교할 수 있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은 일어날 일들을 영원 전부터 알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언제 기도하고 언제 기도하지 않을지 알고 계신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계획하시면서 이러한 정보를 고려하셨다.
하나님은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우리의 중보사역과 조화를 이루도록 계획해놓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의 의무를 인식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성경에서 중보기도에 관한 중요한 구절인 디모데전서 2장 1,2절에서 뜨겁게 권면한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손에 잡힌 도구이기 때문이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느부갓네살왕은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다니엘서 4장은 느부갓네살이 어떻게 병이 들었고, 하나님의 간섭으로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하고 제국의 정책을 바꾸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가이사 아구스도는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도구 역할을 한 또 다른 지도자이다.
그는 제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호적을 명하는 칙령을 내렸다(눅 2장).
이러한 칙령은 메시아가 예루살렘에서 태어날 수 있도록 로마제국이라는 거대한 기계를 움직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에 관한 이런저런 예를 보면서 사람들이 지금 우리처럼 배후에서 통치자들과 왕들과 모든 권세자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들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도구 우리가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도구가 되었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이들을 위한 기도가 우리에게 유익이 되기 때문이다.
바울이 디모데전서에서 말하듯이, 우리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낸다.
선지자는 이들에게 이방국가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 나라가 안녕을 누릴 때 이들의 안녕도 보장되기 때문이다.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니라”(렘 29:7).
지도자들과 다양한 정치 문제를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계획과 반대되는 것들을 하나님께 구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모순된 기도들을 조율하여 그분의 뜻과 조화되게 하신다.

우리의 책임은 최고의 분별력을 갖추고 가장 정직하고 겸손하게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명령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어떤 문제에 대해 느끼는 바를 솔직하게 아뢰고 하나님이 그분의 지혜와 사랑에 맞게 응답해주시도록 구해야 한다.
이것은 겟세마네 원리를 따른다는 뜻이다.

우리는 모든 기도에 절대적인 추신을 덧붙인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난의 잔이 자신을 비껴가기를 간절히 바라셨다.
그러나 마지막에,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믿고 맡기셨다.
이러한 최종적인 믿음의 행위는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과 선하심을 우리의 분별력보다 신뢰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것이 우리 자신의 바람과 모순되더라도….
하나님께 간구할 때, 내가 지성을 가능한 최대로 사용하더라도 실수할 수 있다.
어떤 문제에서 나와는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에 대해 더 예리한 통찰력을 갖고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아버지, 당신을 신뢰합니다.
당신이 행하실 일이 내가 구하는 것과 모순된다 하더라도 그 일이 마땅히 일어나야 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내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을 이루어주십시오.”

바울은 로마서 14장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다.
하나님은 복음 시대에 고기를 먹는 것이나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에 관해 분명하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따라서 이런 문제들이 1세기 로마 제국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바울은 하나님이 명확히 말씀하지 않으신 문제들에 대해서는 각자가 마음의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그는 또한 우리와는 다른 확신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을 사랑과 존경과 정중함과 무엇보다도 겸손으로 대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우리는 어떤 문제에 관해 자신이 어떤 자세를 취하는지 알아야 하며 거기에 맞게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자신과 견해가 다른 사람들에게 정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잠언 21장 1절을 기억해야 한다.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시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가 우리에게 주어진 명령이라는 것은 안다.
이론적인 퍼즐을 맞추는 것은 하나님께 맡겨라.
우리로서는 우리의 기도가 차이를 낳는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

- 버논 그라운즈, 기독교 교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