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기도
신앙생활 FAQ

누구에게 말씀을 나누어야 하는가?

우리는 어두운 방에 촛불을 켜면서 “방의 한 부분만 밝힐까요?”라고 묻지 않는다.
아무리 먼 곳이라도 촛불이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비추도록 놓아둔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증거를 전할 사람들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증거 대상을 선택하시게 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 누구도 멸망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벧후 3:9).
다시 말해, 하나님은 버스 기사, 아이스크림을 파는 아가씨,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그 누구도 멸망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질 틈은 언제나 있으며, 때로는 증거하기에 적절한 순간이 있다.
나는 수영장이나 극장에 서서 전하는 것을 절대로 믿지 않는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때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말씀하셨다(마 10:16).
우리는 증거의 순간을 주의 깊게 선택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우리가 전하는 말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마음을 열고 복음을 들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성령이 조명자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성령께서는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의 잘못을 깨우치실 것이다”(요 16:8).
우리가 사람을 깨우치려 해서는 안 된다.
성령께서 깨우치실 것이다.
항상 상대방의 표정을 살피면서 복음을 제시하면 문제가 없을 거라고 말할 수는 없다.
때로 사람들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전할 때 정중하게 듣기는 하지만 마지못해 듣는 것일 수 있다.
상대방이 복음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알아보려면 눈을 살피면 된다.

눈을 가리켜 영혼의 거울이라고 한다.
상대방의 눈이 반짝인다면, 눈이 “예”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그리스도를 전해야 한다.
반대로, 상대방에게서 적대감이 느껴진다면 계속 밀어붙이며 증거해서는 안 된다.
정중하게 대화에서 물러나거나 상대방 앞에서까지 물러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람들이 우리와의 대화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틀림없는 그들의 권리이다.
그들이 대화하기를 싫어하는 내용이 복음뿐이라면, 그들의 대화가 우리의 제자도를 해치지 않는 한 그들이 대화하기를 원하는 부분으로 진입할 수 있는 다리를 찾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복음 제시에 적합한 때를 기다려야 한다.
사람들의 귀가 준비될 때가 올 것이다.

사람들은 가슴 아픈 일이나 큰 축복을,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슬픔이나 기쁜 일을 겪게 될 것이다.
이들은 어떤 것에 주의를 빼앗기게 되고 복음을 들을 준비를 갖추게 될 것이다.
나는 하나님이 들을 준비가 된 사람들을 주변에 아주 자주 두시는 것을 보면서 늘 놀란다.

최근에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바로 옆에 어떤 청년이 앉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대화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 청년 잘못이 아니었다.
나는 먼 도시에서 긴 모임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중이라 너무 피곤했고 누구와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책 한 권을 꺼내 얼굴을 덮고 세상과 나를 차단하려 했다.
그때 청년이 울고 있는 게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청년과 대화하는 중에 바로 전날 자동차 사고로 청년의 온 가족 곧 어머니와 아버지와 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청년의 말에 따르면, 그는 하나님을 위해 많은 시간을 가져본 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청년에게 누군가 그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예수 그리스도였다.
3만 피트 상공에서, 나는 성경을 펴서 그리스도의 위로와 보살핌에 관한 놀라운 구절을 그와 나누었다.
그리고 청년은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했다.

하나님은 적절한 순간에 사람들을 우리에게 보내신다.
우리가 그 순간에 집중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놀랍게 사용하실 수 있다.

어디서부터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
나는 이것이 가까운 세상,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이것은 복음을 제한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자신이 사는 곳에서 접촉하는 사람들이 이웃동네 사람들과 접촉하며, 그들이 다시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는 식으로 인간관계의 사슬이 이어져 복음이 온 세상을 덮게 된다.
우리는 세상의 어느 작은 귀퉁이에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 귀퉁이에서 정말로 충성을 다한다면, 우리의 충성은 온 세상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실 때 먼저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 예루살렘에서, 다음에는 이웃나라인 사마리아에, 마지막으로 ‘땅 끝까지’ 이르러 그분의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다(행 1:8).
이들은 집에서부터 시작해야 했다.
내가 늘 좋아하는 말이 있다.
“집에서 안 켜지는 등잔이라면 인도네시아에 가져가도 쓸 데가 없다.”

우리가 자신의 삶이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리스도를 전할 수는 없다.
그때까지 기다렸다가는 그분을 전혀 전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은 그렇게 하는 게 옳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님을 모르는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이 지금 많은 문제를 겪고 있으며 영원에서 문제를 겪게 되리라는 것을 안다.
우리가 그에게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은 우리가 대단한 영적 승리를 거두었거나 우리와 주님 사이가 더할 나위 없이 좋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이 그리스도를 발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 캘빈 밀러, 기독교 교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