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인간을 둘러싼 모든 관계에서 용서가 매우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용서는 하나님과의 관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우리 자신과의 관계에서 필수적이다.
또한 그것은 감정적 및 영적 성장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성경은 은혜와 구원이 무조건적으로 주어진다고 가르친다.
우리가 우리의 공로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은 절대적인 진리이다.
그분의 은혜와 사랑을 얻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구원을 얻기 위해 우리가 충족시켜야 할 조건은 전혀 없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로 우리에게 값없이 주어진다.
그러나 성경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기 전에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기를 요구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님은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다”(눅 6:37)라는 원칙을 세워주셨다.
그분은 이 원칙을 계속 강조하신다.
그분이 가르쳐주신 기도에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마 6:12)라는 구절이 나온다.
주기도문을 제시하신 후에 그분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 6:14,15)고 가르치신다.
만약 용서하지 않으면 예수님은 ‘용서하지 않는 종’의 비유를 말씀하신다(마 18:23-35).
그분의 비유에서 결국 이 ‘용서하지 않는 종’은 간수들에게 넘겨지고, 간수들은 그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빚을 다 갚기 전에는 그를 풀어주지 않을 것이다.
주님은 이 비유를 이런 엄한 말씀으로 끝맺으신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 18:35).
또한 그분은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주시리라”(막 11:25)고 가르치신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조건적으로 주어진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주님의 말씀은 기본적인 성경적?감정적?심리학적?영적 원리를 가르쳐주시는 것이다.
즉,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것은, 그분에게 그분 자신의 도덕적 성품에 위배되는 일을 하시도록 구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남을 용서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용서를 받겠다는 것은, 그분이 우리에게 심어주신 원리를 어기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라고 요구하신다는 사실이 잘 믿어지지 않는 사람은, 용서하지 않을 때 어떤 결과가 벌어지는지를 상상해보아야 한다.
상대방을 용서하지 않을 때 우리는 그에 대해 분노하게 된다.
이런 분노는 그 사람과의 관계를 파괴하며, 심지어 우리의 건강까지도 해친다.
어떤 의사라도 “분노심은 신체적 질병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용서를 거부함으로써 생기는 분노는 인간관계와 자신의 신체를 모두 망친다.
하나님의 법칙들은 우리의 존재의 법칙들이다.
그것들은 우리의 두뇌, 근육, 인격 및 사회활동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최고의 법인 사랑 때문에 이 세상이 생겨났으며, 사랑은 용서를 먹고 산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인데, 미움은 분노를 먹고 산다.
그러므로 감정적?영적?신체적 행복을 찾는 사람은 자기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
용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용서를 통해 치유와 성장을 얻을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살펴보자.
다른 사람이 나에게 가한 상처와 고통의 문제에 맞서야 한다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무조건 덮어주고 미화하는 것은 용서가 아니다.
자신이 고통과 피해를 당한 사실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것을 회피하는 것이 용서는 아니다.
“아니, 나는 괜찮아.
내게는 고통이 없어”라고 말하면서 오히려 상대방을 두둔하는 것은 용서가 아니다.
많은 그리스도들이 가해자를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1단계를 건너뛰고 곧바로 2단계, 3단계 또는 4단계로 직행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내가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되지” 또는 “나는 이런 문제를 건너뛸 만큼 신령한 사람이 되어야 해”라고 말한다.
그들은 오히려 가해자의 악행에 대해 변명을 해준다.
아니면 그들은 가해자가 왜 그런 식으로 행동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상담자에게 달려간다.
이렇게 상담자를 찾을 때 그들의 마음속에는 “가해자가 왜 그런 식으로 행동했는지를 알아낸다면 나의 문제는 해결될 것이고, 나는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그러나 우선 자신의 상처를 똑바로 보면서 적어도 자신에게 “이 가해자는 정말로 나를 아프게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를 용서할 수 없다.
- 데이빗 씨맨즈, 기독교 교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