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기도
신앙생활 FAQ

사랑의 감정들이 사라질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②

◈ 사랑의 세 개념
그리스어는 여러 가지 단어들로 사랑을 표현한다.
그것들 중 하나는 ‘에로스’(eros)이다.
‘에로틱’(erotic)이라는 영어 단어가 바로 이 그리스어에서 유래하였다.
에로스는 자기중심적인 사랑이며 낭만적 사랑이다.

나는 현대인의 사랑의 개념에 가장 근접하는 표현이 바로 이 ‘에로스’라고 생각한다.
“나는 당신에게서 강한 매력을 느끼며 그것을 소유하기를 원한다”고 말하는 것이 에로스이다.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의 아름다움은 내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입이 마르고 손에서 땀이 났다.
나는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
잠도 오지 않고 먹지도 못했다.
학교운동회 때에 마음이 설레듯이 심장이 뛰었다.
이런 감정이 바로 ‘낭만적’ 사랑이다.

그러나 낭만적 사랑 곧 에로스는 자기중심적인 사랑이다.
이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결혼을 지속적으로 유지시켜주는 기초가 될 수는 없다.
오직 낭만적 사랑에 기초하여 결혼을 유지시키겠다는 것은 망상이다.
이런 결혼은 오래 갈 수 없다.
아름다움도 사라지고 감정도 식어버린다.

감정에 기초한 사랑만을 고집한다면, 그 감정이 사라진 다음에는 어떻게 하겠는가?

‘사랑’을 표현하는 또 다른 헬라어는 ‘필레오’(phileo)이다.
이것은 ‘상호적인 가족 간의 사랑’이다.
이 사랑은 “당신에게는 내가 좋아하는 점이 있고, 내게는 당신이 좋아하는 점이 있다.
이런 전제 하에 함께 어울리자”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양자 간에 주고받는 사랑’이다.
이 사랑의 소유자는 자기 가족의 구성원에게 크게 분노할 때도 있지만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자기 가족부터 감싸준다.

에로스와 마찬가지로 필레오도 잘못된 형태의 사랑은 아니다.
하지만 에로스와 마찬가지로 이것도 영구적인 사랑의 기초로는 부족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필레오의 차원에서 사랑할 경우, 서로 간에 얻을 수 있는 유익이 점점 줄어든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한쪽은 주기만 하고 다른 쪽은 받기만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만일 가족끼리 필레오의 차원에서만 서로 사랑한다면 그 가족은 언젠가 붕괴될 것이다.

‘사랑’을 뜻하는 또 다른 헬라어는 ‘아가페’(agape)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아가페의 사랑이다.

하나님은 세상이 그분의 아들을 거부하고 죽일 것을 알면서도 아들을 주셨는데, 이것은 바로 아가페의 사랑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죄를 지극히 미워하시는데, 이 미움을 극복하고 죄인들을 용서하시는 것이 바로 아가페의 사랑이다.
다른 종류의 사랑들의 한계를 극복하고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랑이 바로 이 사랑이다.
이것은 받는 사람의 반응과 상관없이 계속 주는 사랑이다.

이것이 바로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하는 사랑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페하리라”(고전 13:4-8).

이 위대한 사랑의 정의 안에 ‘설레는 감정’이나 ‘자아실현’이 언급되는가?
그렇지 않다.
아가페는 수동적 사랑이 아니라 능동적 사랑이다.
이것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오직 상대방의 유익을 위하여 존재하는 사랑이다.
이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우리의 결혼 생활이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려면 결국 우리에게는 아가페의 사랑이 요구된다.
어떤 결혼 생활이든 간에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사랑을 모두 필요로 한다.
이 세 가지 사랑이 동시에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상황에 따라 한두 가지 사랑이 나타나고, 다시 상황이 바뀌면 또 다른 사랑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바탕에 깔려야 하는 것은 이타적인 아가페 사랑이다.
아가페 사랑에 도달하는 길은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를 통해서 흘러나올 정도로 그분의 사랑에 잠기는 것이다.

- 존 페어렐, 기독교 교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