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이 주권적이시라면 왜 제가 성가시게 결정을 내려야 합니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주권’을 자신이 결정을 내리는 데 문제를 일으키는 식으로 정의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들은 하나님의 주권이 모든 것이 일어나는 방식 그대로 일어나게 하며, 따라서 다른 어떤 대리자도 여기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다.
이렇다면, 자신의 결정이 실제로 차이를 낳는 중요한 행위자인 체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의 결정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은 되어야 하는 그대로 될 것이다.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중요성에 절망을 느낄 정도로 하나님의 주권의 진정한 성격을 많이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다.
모든 게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이루어질 거라면 우리가 결과를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의 주권을 이런 식으로 정의한다면, 소위 우리의 결정이라는 것도 백 퍼센트 운명이나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주권은 이러한 결정론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경은 하나님이 창조자이며 세계의 주님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것은 그분이 꼭두각시를 조종하는 분이라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자유로운 선택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거하는 곳으로 세상을 지으셨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특권과 책임을 우리에게 주셨다.
예를 들면, 누군가 잔혹 행위나 절도와 같은 사건들을 일으킬 때 그 일은 온전히 그 당사자에게 책임을 물을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잘못 정의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지만, 하나님의 주권은 어떤 종류의 결정론과도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인간이 땅에서 책임 있는 지배권을 행사하도록 인간을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실 때 그분을 사랑할 수 있고 그분과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존재로 지으셨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와 같은 자유로운 피조물을 창조하는 위험을 감수하셨다.
하나님이 단순히 우리가 언제나 옳은 일만 하도록 우리를 만드셨다면 훨씬 더 수월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위험이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셨던 게 분명하다.
그분은 기계처럼 움직이는 인간을 창조하실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결정하셨다.
그분은 피조물인 인간들과 인격적인 언약을 맺기를 원하셨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유가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다.
사랑의 관계는 강요를 통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 주권은 결정론이 아니다!
나는 하나님의 주권이 결정론을 의미할 수 없는 가장 분명한 증거는 인간의 ‘죄’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짜 자유를 주셨으며, 우리는 이 선물을 이용하여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거부하거나 그분에게 등을 돌렸다.
주권이 결정론을 의미한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짓기를 원하신 게 되며, 따라서 그분이 죄의 조성자가 되실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성모독은 결코 성경의 시각이 아니다.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은 우리가 자유라는 선물을, 죄를 짓는 데 사용하는 것을 슬퍼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짓는 죄를 결정하시기는커녕 오히려 죄를 미워하신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그분의 피조물들에게 진정한 자유를 어느 정도 허락하셨으며 그들이 이러한 자유를 사용하도록 허락하신다는 것이다.
마치 세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꼼짝달싹 못하게 정해놓으신 것처럼,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일어날 모든 일을 미리 결정하는 청사진으로 생각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성경적 의미의 주권이란 역사 속에서 그분의 목적을 이루어가고 계시는 그분의 통치를 가리킨다.
목적 자체는 변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그 목적을 이루시는 방법은 유연하며 일어나는 일에 민감하다.
세상은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만 일어나는 통제된 상황이 아니다.
그렇다면 세상은 참으로 다스리기 편한 곳일 것이다.
오히려 세상은 자유로운 대리자들이 있는 곳이며, 따라서 유연한 주권을 갖고 다스려야 하는 곳이다.
이제 첫 질문에 답해야 할 때가 되었다.
하나님이 주권적이라면 왜 우리가 성가시게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
하나님의 주권은 가장 작은 부분까지 통제하는 형태가 아니며 우리에게 미래의 실현을 위해 협력하라고 요구하는 유연한 주권이다.
우리는 이것을 기도에서 아주 분명하게 볼 수 있다.
하나님은 그분과 함께 우주를 경영하자며 우리를 초대하신다.
그분은 실제로 우리의 기도를 그분이 이렇게 행동하는 대신에 저렇게 행동하도록 이끄는 요인으로 받아들이신다.
우리가 주권에 대한 결정론적 정의를 거부하지 않는다면 기도가 변화를 일으킨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의 결정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분이 미래를 빚으시는 상황에서 우리의 결정을 존중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셨다는 것을 우리가 인정할 때, 하나님의 주권은 축소되는게 아니라 확대된다.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의 결정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시는가를 깨달을 때 우리의 존엄은 더 없이 커진다.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생명을 택하고”(신 30:19).
- 클라크 피녹, 기독교 교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