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들은 믿음의 양을 측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기독교 역사의 교훈이다.
신앙을 우리의 마음대로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있는 양으로 인식하는 것은 신앙의 본질에 위배되는 것이다.
신앙은 ‘반응’이다.
즉, 그것은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하나님께 반응하는 것이다.
신앙은,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우리를 향해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반응이다.
우리가 우리의 신앙의 양을 측정하기 위해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의 관심의 초점은 하나님에게서 우리 자신에게로 옮겨진다.
신앙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고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믿음을 늘려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우리의 방법으로 신앙을 증가시키려는 시도는 위험하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다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17:20).
이 말씀은 무슨 뜻인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활동하실 때 우리가 지극히 작은 반응이라도 보인다면 일단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콘크리트 벽처럼 단단한 우리의 의지에 지극히 작은 균열이 생긴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이용하여 우리에게 개입하신다.
하나님이 주도하시고 우리가 반응하는 신앙의 과정에서 우리의 역할은 겨자씨처럼 작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것을 사용하셔서 산을 능히 옮기신다.
신앙은,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이루시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즉, 그분이 우리를 온전하고 성숙한 상태로 끌어올리시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죄는 우리를 산산이 부수고, 우리 삶의 균형과 조화를 깨뜨린다.
그러나 하나님은 본래 창조에서 의도하셨던 균형과 조화를 회복시켜주기를 원하신다.
신앙 성장은 우리의 삶이 얼마나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가에 비례한다.
다시 말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북돋우고 스스로의 기준에 의해 신앙의 양을 측정하는 방법으로는 흐트러지고 조각난 삶을 통합할 수 없다.
우리의 삶을 회복하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분이 우리 안에서 이루시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성령님께 마음을 열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성령님께 드려야 한다.
- 유진 피터슨, 기독교 교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