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기도
신앙생활 FAQ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일하시면 우리는 로봇이 되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주권과 우리의 회심에 대해 말할 때, 두 가지를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것은 우리의 결정이고 우리의 책임이고 우리의 행동이다.

그러나 일단 우리 자신을 주 예수님께 맡기고 그분을 구주로 영접했다면, 우리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이 우리를 결신(決信)으로 인도하신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영접하자마자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그분께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이 우리를 그분께로 이끄셨기 때문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지혜나 훌륭한 판단 때문에 믿음을 갖게 된 것이 아님을 잘 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 때문에 결신이 가능했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을 찬양해야 한다.

◈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말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딱딱한 신학적 주제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생활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분의 주권적 의지가 아주 실제적인 부분들에서 실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분의 주권적 의지가 실현되어가는 중에 그것을 알아챌 수도 있고, 아니면 그것이 실현된 지 몇 년 후에 그것을 깨달을 수도 있다.

내가 리젠트 신학교(Regent College)의 교수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브리스톨(영국 서부의 항구)에 있는 트리니티 신학교(Trinity College)의 내 서재에 앉아 있을 때 나는 리젠트 신학교의 학장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캐나다의 밴쿠버에서 전화를 한 그는 나에게 그의 대학에서 가르쳐달라고 말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대서양을 건너가서 살 생각이 없었던 나는 리전트의 교수 자리가 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그 교수 자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했을 때 나는 그것이 나에게 딱 맞는 자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하나님이 이런 상황이 벌어지도록 주권적으로 인도하셨음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리전트 대학이 원하는 것과 나의 평소의 비전이 서로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것을 채워주는 데 내가 적임자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는 이렇게 분명히 나의 삶 속에서 실현되었다.

그 후 나는 그분의 주권적 손길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나의 아내는 집을 구입하기 위해 나보다 먼저 밴쿠버로 오게 되었다.
그녀가 그렇게 하려고 했던 이유는 밴쿠버에서 좋은 집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결국 그녀의 예감이 적중했다.
그녀는 밴쿠버에 와서 정말 우리에게 이상적인 집을 사게 되었으며, 우리는 아직도 그 집에서 살고 있다.
영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캐나다로 오는 일은 거의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진행되었다.

단 하나의 문제라면 그것은 교회의 선택이었다.
우리가 살려는 지역에서 우리에게 적합한 교회를 찾는 것이 쉬울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가 캐나다로 이사 오기 6개월 전에 캐나다의 복음주의적 성직자들 중 가장 오래 사귄 나의 친구가 전혀 뜻밖에 밴쿠버의 큰 교회로 청빙되었다.
그 교회는,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신 그 이상적인 우리의 집에서 자동차로 5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있었다.
그 교회는 모든 면에서 우리에게 영적으로 가정과 같은 곳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의 손길을 또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이 어떻게 현실 속에서 실현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그분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우리의 책임을 박탈하지 않으면서도 우리에게 개입하셔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신다.

주권적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삶 속에 깊숙이 개입하신다.
그분의 개입을 눈으로 볼 수 있을 때뿐만 아니라 그것을 눈으로 볼 수 없을 때에도 그분은 늘 우리의 삶 속에서 그분의 뜻을 이루어가신다.

◈ 기계적인 하나님?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개입하신다고 해서 우리가 로봇처럼 되는 것은 아니다.
그분의 주권이 작용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자유롭게 결정하고 그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된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개입하신다고 해서 우리가 우리의 책임 하에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오해하는 이유는 ‘주권적인 하나님’을‘기계적인 하나님’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할 때 그것은 그분이 언제나 통제하신다는 것, 즉 그분의 뜻을 떠나서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분은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서 우리에게 관심이 없는 분이 아니시다.
우리에게 사랑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은 또한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이다.

우리를 만드실 때 하나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사랑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를 다루실 때 그분은 우리의 인간으로서의 속성들을 무시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를 막대기처럼 다루거나 그분의 뜻대로 이곳저곳으로 마구 끌고 다니지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를 인격 대 인격으로 대하신다.

그분은 그분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마음에 말씀하신다.
그분은 우리에게서 사랑의 반응을 이끌어내신다.

- 제임스 패커, 기독교교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