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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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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군가를 용서하고 사랑하고 있는가?’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의 열매를 맺은 것이 아닙니다.

 2018-1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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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마 5:44,45

많은 성도들이 이 말씀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딸인 것은 원수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절대 하나님의 아들딸이 아닙니다.

나중에 하나님 앞에 갔을 때 교회는 다녔지만 그런 말씀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고 그러시면 안 됩니다.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원수도 사랑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중요하면서도 두려운 것입니다.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의 열매를 맺은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도 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지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십시오. ‘나는 과연 원수를 사랑하고 있는가? 나에게 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안겨준 누군가를 용서하고 사랑하고 있는가? 나에게 가슴 깊이 상처를 준 누군가를 용서하고 사랑하고 있는가? 이유 없이 비호감인 사람, 관심 갖기 싫은 사람, 과거 내게 아픔을 주었던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가?’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모두를 품으라고 하십니다. 그들조차 사랑하는 것이 사랑의 열매를 맺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요 13:34),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기준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원수도 사랑하신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남미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이 쓰신 동행일기를 읽다가 선교사님이 많이 힘드시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루는 선교센터에 현지 경찰들이 들이닥쳤다고 합니다. 예배당 건축을 위해 모아둔 목재 창고가 불법이라며 경찰서장부터 말단까지 찾아와 협박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목재는 모두 합법적으로 구입한 것이었습니다. 현지 사역자들까지 나서서 그 나라의 고아와 과부와 가난한 이들을 돕는 선교사님의 사역을 설명했지만 그들은 무조건 감옥에 집어넣겠다고 막무가내였습니다.

오랜 협박 끝에 그들이 드러낸 본심은 관행상 목재 값의 반을 내놓으라는 것이었습니다. 한화로 수천만 원에 달하는 돈을 요구하자 선교사님은 차라리 감옥에 가겠다고 했고, 현지 사역자들이 경찰서장을 가까스로 설득하여 미화 만 불로 조정했지만 선교사님은 그래도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결국 3천 불을 주고 없던 일로 하기로 하여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어렵게 돈을 만들어서 경찰서장에게 전화를 했는데 통화 연결음이 복음성가였다는 것입니다.

그때 선교사님의 가슴이 무너졌다고 합니다. 그 나라에서는 어지간한 믿음이 아니고서는 복음성가를 통화 연결음으로 쓰지 않는데, 전화 통화 연결음을 복음성가로 해놓았다면 그가 얼마나 고백적인 크리스천이겠습니까? 아마 어느 교회의 자랑스러운 집사나 장로쯤 되었던 모양입니다. 선교사님은 무거운 나무를 짊어지고 나르느라 생긴 통증이 너무 심해져서 비명을 질렀습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내가 이러려고, 이 대접 받으려고 온 몸이 망가지고 부서져라 사역을 했던가.’

그런데도 주님은 사랑할 수 없는 그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선교사님은 일기 마지막에 이렇게 쓰셨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마음을, 인간이기 때문인지 도저히 내 힘으로는 내 안에 채울 수가 없어서 주님의 이름을 눈물로 부릅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사랑은 하나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입니다. 사랑은 할 수 있으면 하고 힘들면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사랑을 받아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다른 사람을 그렇게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많은 성도들이 절망을 느낍니다. 예수를 믿기는 믿어도 사랑으로 소문나지 않았고, 원수를 사랑할 자신도 없기 때문입니다.

원수도 사랑하라는 말씀이 너무 부담스럽고 그대로 살 수 있다고 믿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을 율법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원수도 사랑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하라고 요구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은 분명히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힘으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3장, 14장, 15장은 장차 성령이 오셔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우리를 도우실 것에 대해 말씀하시며 아울러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사랑하게 해주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 안에 성령이 오셔서 우리로 하여금 사랑하게 만들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성령의 열매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힘으로 할수 없기에,
나를 망가뜨리는 미움을 회개하며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구하기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도 분명히 사랑은 성령의 열매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열매 중에 첫 번째가 사랑입니다. 이 말은 모든 열매 중에 대표라는 것이고 다른 모든 열매가 그 속에 들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사랑은 그냥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실 뿐 아니라 성령을 보내셔서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라”가 아니라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지 아셔야 됩니다. ‘원수도 사랑하라고? 아, 나는 그를 어떻게 사랑할지 모르겠어. 그럴 능력과 자신이 없어.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어’ 그러시면 안 됩니다.

‘아, 원수도 사랑하게 되겠구나! 나는 나 자신도 사랑하지 못하고 가족도 사랑하지 못했는데, 이제 예수를 믿었으니 주님이 나로 하여금 원수도 사랑하게 만들어주시겠구나. 어떻게 원수도 사랑할 수가 있지? 그런 기적이 어떻게 내게 일어날까?’ 이런 설렘을 가지셔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 말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요한복음 13장 34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 요한일서 4장 7,8절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 요한일서 4장 11절

† 기도
주님,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제 몫이 아닙니다. 성령님을 통해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그 사랑을 품게 하소서. 사랑의 주님의 마음으로 원수를 품고 사랑하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주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성령님께 원수까지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해보세요.



낭독으로 만나는 테마
귀로 들어요~ 갓피플 테마. 눈으로만 읽는 것과는 다른 은혜가 뿜뿜. 테마에 담긴 주님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다양하고 새롭게 나누어지기를 기도하며, 갓피플 직원들이 직접 낭독했습니다. 어설퍼도 마음만은 진실한 낭독러랍니다^^ 같은 은혜가 나누어지기를...





† 지금 교회와 성도에게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