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아버지가 요양원 바닥에 쓰러져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가게 된 그 요양원에서 얼마나 무관심하게 방치되었는지 자세히 전해주었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손가락으로 연신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갈라진 목소리로 여러 질문을 했다. 언니와 나는 아버지에 대한 연민으로 가슴을 태웠다.
그런데 그때 문득 새로운 이 관계에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내가 아버지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때 마침 아버지의 뇌졸중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며칠 후, 로리 언니는 아버지를 보살피기 위해 플로리다로 날아갔다. 아버지에게 간 언니가 내가 아버지와 통화할 수 있도록 아버지 귀에 전화기를 대주었다.
“아버지, 레슬리예요. 좀 괜찮으세요? 여기는 알래스카고요.”아버지는 깜짝 놀란 듯 탄성을 지르더니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냥 아버지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제가 아버지를 위해서 매일 기도하고 있다는 것도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혹시 제가 보낸 카드 받으셨어요?”
아버지가 뭐라고 대답하는 것 같았지만 정확히 들리지는 않았다. “머릿속에서 어떤 말들이 떠다니는데 말로 하지 못할 때가 얼마나 힘든지 저도 잘 알아요!”“그래… 힘들어….” 아버지가 공감한다는 듯 힘겹게 몇 마디를 했다.
“얼마 전에 아버지에게 카드를 보냈고, 그다음에 책도 한 권 보냈어요. 혹시 누군가가 아버지 우편물을 가져다가 읽어주지 않던가요?” 끙끙거리는 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것이 긍정의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좋아요. 카드를 받으셨다니 기뻐요. 저도 조만간 아버지를 뵈러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아버지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아버지의 삶에 작은 기쁨이라도 불어넣기 위해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가치가… 없는….”아버지가 더듬거렸다. 나는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마치 폐부(肺腑)를 꿰뚫린 것처럼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다.
“아니에요!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그런 대접을 받을 충분한 가치가 있는 분이에요!”나는 애써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물론 아버지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즉시 알 수 있었다.
사실 공평과 정의라는 인간의 저울에 달아볼 때,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그런 희생과 관심을 받을 만한 일을 전혀 한 적이 없었다. 당시 우리 육 남매는 아버지를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적지 않은 경비를 지출하며 아버지를 돌봤다. 우리는 그렇게 아버지를 위해 저마다의 삶을 보류하고 연기했다.
하지만 내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던가? 우리와 떨어져서 살기 위해 이 나라 남쪽 끝에 은거했던 사람이 아닌가? 아버지의 말은 옳았다. 자신은 자식들의 관심과 희생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그 말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전적으로 타당했다.
내가 한 해 동안 아버지를 위해 무엇을 할 때마다 예민하게 의식이 됐던 것도, 내가 아버지를 위해서 하는 어떤 일이든지 간에 그것은 아버지가 나를 위해 해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우주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타인의 관심과 희생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내 마음속 깊이 깨달은 것이다. 아버지가 한 말은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과 측량할 수 없는 자비로 만들어진 이 우주의 본질적인 구조에 어긋난 것이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이요 하나님께서 호흡을 불어넣으신 피조물로서 관심과 친절을 받을 만한 자격을 지니고 있다. 그 어떤 남자나 여자, 그 어떤 어머니나 아버지도 거기서 제외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요한복음 3장 16절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 에베소서 2장 10절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 시편 139장 16절
† 기도
주님의 한없는 사랑, 그 사랑을 바라봅니다. 내 힘으로는 용서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지만 주님이 함께하시면 사랑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완악한 마음을 깨뜨려주시고 새로운 마음으로 화평케하는 사람되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타인의 관심과 희생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주님의 시선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