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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친구, 친척들 속에서 감사보다 불평이 더 자연스럽도 합니다.

긴 명절연휴를 지내며 감사하고 기쁜일도 많지만 오랜만에 만난 형제, 자매, 친척, 친구들 속에서 나의 상황과 처지를 보면 감사하기 보다는 비교와 불평이 더 자연스럽도 합니다.

나만 빼고 다들 행복하고 일도 잘되고 아이들도 다 공부도 잘하는것 같을 때 속상하고 힘든 마음이 드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 마음 그대로 주님께 가져가길 원합니다. 주님이 주신 나의 가정과 자녀는 주님이 주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심각하고 복잡한 데 있지 않다.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소박한 것에 대해 자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_딤전 6:6

하나님이 내게 주신 내 아내, 내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도대체 내가 왜 이런 사람과 결혼했지?’ 싶어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귀한 선물로 여기고 자족하기 바란다. 옆집 아이들은 저렇게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 듣는데 도대체 우리 아이들은 왜 이런가 싶더라도, 그 말썽꾸러기 아이조차 자족하며 품고 사랑할 때 그 아이는 반드시 변화된다.

이런 자족이 우리 삶에 있을 때 우리는 탐욕의 자리로 빠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삶에는 이런 자족이 있는가? 우리가 잘 아는 빌립보서 4장 11,12절 말씀도 마찬가지 아닌가?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_빌 4:11,12

이런 자족의 삶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바울이 말한 이런 자족의 삶을 살기 원한다면 그다음 13절을 보라. 어떤 상황에서도 ‘자족할 수 있는 마음’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_빌 4:13

오직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탐심에 빠지지 않고 자족할 수 있는 힘은 내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 아닌가?

2015년 3월에 세상을 떠난 싱가포르의 초대총리인 리콴유에 관한 기사에서 도전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분은 세상을 떠나기 전인 2011년에 가족에게 미리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내가 죽거든 지금 사는 집을 절대 기념관으로 만들 생각을 하지 말고 헐어버리라.” 자기를 드러내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긴 그의 유언이 인상적이지 않은가? 그다음 내용은 더 감동적이다.

리콴유 총리가 허물어버리라고 한 그 집은 그가 총리에 취임하기 전부터 살았던 75년 된 낡은 집이었는데, 기자가 가보니 얼마나 낡았는지 구태여 일부러 허물지 않아도 저절로 허물어지게 생겼다는 것이다. 60년 가까이 총리를 지낸 분의 집이 이렇게 낡은 집이었다는 것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분이 크리스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예수 믿는 우리라면 이분처럼은 아니어도 세상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에 자족할 수 있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중고등학생 시절에, 그러니까 70년대에 건전가요처럼 불리던 노래 하나가 오랜만에 떠올랐다. 그때 굉장히 자주 불렀던 노래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은 작은 초가집
내가 먹고 싶은 것은 구운 옥수수
욕심 없는 나의 마음 탓하지 마라
사람들아 사람들아 워워워 워어

2절 가사를 보면 이것이 복음성가인가 착각할 정도이다. 2절은 이렇다.

내가 입고 싶은 옷은 하얀 저고리
내가 갖고 싶은 책은 작은 성경책
욕심 없는 나의 마음 탓하지 마라
사람들아 사람들아 워워워 워어

이런 가사가 대중가요로 불렸다는 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그 시절이 그리워졌다.
오늘 우리가 잃어버린 게 바로 이것 아닌가? 오늘날 이 시대는 왜 이렇게 탐욕이 가득한 시대로 변해버렸는가?

탐욕으로 가득한 이 시대를 사는 우리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이 탐욕의 도시를 닮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점검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그날그날 주님이 내려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다. 그 분들이 진정한 복음을 살아내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이런 삶을 살아내는 그들은 그것이 복음이 주는 능력임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도 우리가 믿는 복음이 내 안의 탐심을 죽이고 강력한 진을 파하는 능력이 되어 “사람들아, 사람들아, 이 욕심 없는 내 마음 탓하지 마라”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다 이렇게 기도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복음의 능력을 믿습니다. 복음은 눈에 보이는 어떤 강한 원수라도 물리치는 도구이지만, 동시에 내 안에 제어할 수 없는 마음, 어떻게 해서라도 나를 섬기고 나를 위하고자 하는 탐심을 파하는 강력한 능력이 되는 줄 믿습니다.” 이렇게 기도할 때 복음이 능력이 되어 내 안의 탐심을 깨뜨리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는다.

우리의 탐심은 이미 십자가에 못을 박았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나아가자. 그럴 때 성령께서 성령으로 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이다.
<복음으로산다>이찬수p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