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곽상학의 말과 말씀

[곽상학의 말과 말씀] 아가시(雅歌詩)와 건달들

‘사람은 사랑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랑은 사람에게 있어서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가장 보편적인 정서(情緖)이자 인생의 궁극적인 존재의 이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사랑’은 사람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감정’이자 ‘가치’이기 때문에 늘 문화 예술 콘텐츠의 최고의 소재로 자리하고 있다. 현전(現傳)하고 현존(現存)하는 노래 중에 주술가, 군가, 애국가, 교가, 찬송가를 제외한 이 땅의 모든 대중가요는 사랑을 노래한다.

문화 인류학적으로 문학, 무용, 미술, 연극 등과 함께 온 인류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아 온 대표적인 문화 예술 콘텐츠는 음악이다. 무대 위의 종합예술인 뮤지컬과 문화 산업의 첨병을 자임하는 영화는 이 모든 예술의 종합선물세트라고 할 수 있는데 공생(共生) 관계를 유지하는 이 양대 종합 예술의 필수 불가결한(essential) 예술 장르 또한 다름 아닌 ‘음악(노래)’이다.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미스 사이공’, ‘캐츠’ 등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Guys & Dolls)’은 1951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이래 뮤지컬의 고전이 된 작품으로 국내에서도 거의 매년 무대에 올려졌다.

대몬 러넌의 단편 소설을 바탕으로 에이브 버로우스(Abe Borrows)가 극본을 쓰고, 프랭크 로서(Frank Loesser)가 음악을 맡은 이 작품은 탄탄한 구성력을 바탕으로 춤과 노래, 화려한 무대와 조명, 의상으로 오랫동안 관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뉴욕 나이트클럽을 배경으로 도박에 미쳐 14년째 약혼녀 ‘아들레이드’와의 결혼을 미루고 있는 ‘나싼’과 깐깐한 선교사 아가씨 ‘사라’ 또 그녀를 유혹할 수 있는가를 놓고 나싼과 내기를 벌이는 ‘스카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유쾌하고도 코믹한 사랑 이야기이다.

제목처럼 이 작품은 ‘스카이’와 ‘나싼’이라는 건달들이 나온다. 느와르(noir)라는 장르가 생길 만큼 범죄나 사회 부조리가 작품 소재의 일색일정도로 이제는 건달이나 조직 폭력배는 친근하기까지 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소위 ‘양깡불건’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양아치, 깡패, 불한당, 건달’이 판치는 세상 말이다.

‘양아치’는 ‘동냥아치’에서 온 말이다. ‘동냥아치’의 ‘동’이 생략되어 ‘냥아치’가 되고, ‘냥아치’의 두음 ‘ㄴ’이 탈락하여 ‘양아치’가 된 것이다. ‘깡패’는 영어 갱(gang)에서 따와 ‘갱들의 패거리’라는 뜻으로 갱패(gang牌)라고 부르게 되는데, 함께 어울려 다니며 말썽을 일으키는 패거리를 일컫는다.

‘불한당(不汗黨)’은 한자 그대로 땀(汗) 흘리지 않는(不) 무리(黨)'이라는 뜻으로 일하지 않고 놀고먹는 무위도식(無爲徒食)하는 자들을 이른다. ‘건달’은 불교에서 온 말로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간다르바(Gandharva)'에서 유래했다.

이 '간다르바'는 떠돌아다니며 향을 먹고 노래와 춤을 추는 음악을 다스리는 신으로 한자로 전사(傳寫)한 것이 '건달파(乾闥婆)'가 되었고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거나 게으름을 부리는 사람을 가리키게 되었다.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은 건달들이 허랑방탕한 자신의 인생 가운데 비로소 찾아온 아가씨가 진짜 사랑이라는 것을 뒤늦게서야 깨달아가는 이야기를 노래와 춤으로 풀어내고 있다. 불교의 신이지만 노래와 춤을 주관하는 신이 건달이었으니 어쩌면 뮤지컬 무대에 주인공으로 올라 노래와 춤으로 사랑을 찾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도 모르겠다.

인생을 허비하며 빈둥거린 건달 ‘스카이’와 ‘나싼’을 향해 부른 아가씨 ‘사라’의 노래는 보는 관객의 마음을 저미게 한다. 이 아가씨의 노래와는 비교 자체가 안 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가 있다.

아가시(雅歌詩)의 노래이다.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와 함께 성경의 시가(詩歌) 문학의 한 권인 아가(雅歌,Song of songs)는 ‘노래 중의 노래’라는 뜻을 가진 책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노래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솔로몬의 노래이다.

아가서는 성경임에도 하나님이란 단어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원색적인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로만 가득 채워져 있다. 포도원지기였던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 왕의 사랑 이야기는 신분과 국경을 초월했을 뿐만 아니라 남녀 간에 가질 수 있는 가장 순전하고 순결한 사랑의 결정체를 보여준다.

결혼과 부부의 아름다움, 더 나아가 풍부한 은유와 다양한 상징이 동원되어 성도와 하나님의 사랑, 신랑 되신 예수님과 신부인 교회의 사랑을 매우 감각적이면서도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이 책은 지금도 매년 유월절 제 8일 째 되는 날, 유대인들에 의해 낭송되고 있다. 죄에 종살이하던 당신의 자녀를 가슴에 품고 죽음을 넘어선(踰越, passover) 아버지의 사랑이 완성된 그 날을 감격하며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1986년에 발표된 로버트 스턴버그(Robert Sternberg)의 사랑의 삼각형 이론(triangular theory of love)은 사랑에는 반드시 수반하여 균형이 잡혀야 할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정서적 투자’로부터 도출된 ‘친밀감(Intimacy)’과 ‘동기적 몰입’에서 도출된 ‘열정(passion)’, 그리고 ‘관계에 대한 헌신과 그 안에서의 인지적 결정’으로부터 도출된 ‘헌신(commitment)’인데 이 세 가지 요소가 제대로 균형을 잡고 서 있어야 온전하고 성숙한 사랑이 유지된다고 한다.

균형을 잃은 채 일그러져버린 가짜 사랑이 범람하는 이 시대에 마치 홍수 때 마실 물이 없는 것처럼 사람들은 진정한 사랑에 대한 갈증을 노래하고 있는 건 아닐까. 홍수처럼 밀려드는 이 사랑의 노래들 속에서 꺼지지 않는 사랑의 불을 찾아 노래하는 것이야말로 내 인생의 무대 위에서 내가 쏟아 부어야 할 예술혼(藝術魂)일 것이다.

건달(乾達)같은 내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연가(戀歌)를 들려준 ‘아가시(雅歌詩)’는 비단 솔로몬만의 노래는 아닐 터. 그 어떤 소방수(消防手)도 진화(鎭火)가 힘든 불같은 아가시(雅歌詩)는 정열의 러브 소나타, 노래 중의 노래(Song of songs)이니 말이다.

많은 물도 그 사랑의 불을 끌 수 없으며 홍수도 그것을 덮어 끌 수 없습니다.” (아가 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