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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몸이 나으면 병원에 가겠어요!”

 2016-09-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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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예수님의 매력을 한 단어로 설명해야 한다면, 나는 당연히 ‘은혜’라고 말하고 싶다. 성경에 나오는 은혜라는 단어는 헬라어 ‘카리스’charis의 번역어로서 ‘분에 넘치는 호의 혹은 선물’을 뜻한다.

이처럼 은혜는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것을 받는 것,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을 얻는 것이다. 이는 은혜에 대한 실제적인 정의이지만, 은혜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체험해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신약 시대에 예수님의 뒤를 따라다녔던 사람들은 예수님께 가서 그분이 베푸시는 은혜를 체험하면 자신들의 삶이 영원히 변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정반대의 심적 경향, 즉 “먼저 네 삶을 변화시켜라. 그런 다음에 예수님께 가라!”라는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그런 식의 사고를 하고 있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어딘가에서 그런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당신은 다음과 같이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본 적이 있을 것이다. “교회에 갈 마음이야 늘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술을 먼저 끊기 위해 애쓰고 있는 중입니다!”“물론 예수님을 제 삶에 모시고 싶어요. 하지만 제 삶에는 먼저 깨끗이 청소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아요!”

어쩌면 당신도 이와 유사한 생각을 한 적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당신이 아무리 선한 의도로 이러한 사고방식을 받아들였다고 해도, 그것은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아픈 몸이 나으면 병원에 가겠어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나타나는 은혜의 결여 현상, 즉 아무 조건 없이 주시는 예수님의 은혜를 세상 모든 사람에게 널리 드러내거나 전하지 못하는 현상은 세상 사람들을 예수님께 데려오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마 당신은 티셔츠나 자동차 범퍼에서 “나는 예수님을 사랑해요.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좋아하지는 않아요!”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언젠가 혹자는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의 확산에 가장 심각한 장애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다!”

나는 위와 같은 진술들이 전적으로 타당하다고 보지 않는다. 또 그런 진술이 때로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에 대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또한 거기에 어느 정도의 타당성이 담겨 있다고 본다.

예수님의 은혜를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오늘날의 몇몇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인식을 기술하는 최선의 표현은 ‘비극적이다’라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기독교에서는 은혜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혹자는 아무 조건 없이 주시는 예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순종을 강조하는 것 또한 중요하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물론 그렇다. 그러나 그렇다고 은혜의 중요성이 감소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값도 없이 받은 그 은혜를 동일하게 아무 조건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고 전해야 한다(마 10:8 참조.)

† 말씀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 마태복음 10장 8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 로마서 3장 23, 24절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 로마서 6장 14절

† 기도
값없이 받은 예수님의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잘 전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하시옵소서.

† 적용과 결단
당신은 값없이 받은 예수님의 은혜를 잘 전하고 있습니까?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그 은혜를 동일하게 아무 조건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는 자가 되기를 결단해보세요.





† 지금 교회와 성도에게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