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어노인팅 찬양과 묵상

[어노인팅 찬양과 묵상 #07] 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 (공동체 돌보기) by 전은주

처음 영어를 배울 때, “How are you?(넌 어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I am fine. Thank you, and you?(나는 좋아. 고마워, 너는?)”이라고 배웠다. 놀랍도록 답은 정해져있었다. 그리고 몇 년 전 유학 시절, 같은 질문에 아무 생각 없이 잘 지내지 않고 있는 나의 이야기를 주절거렸다가 매우 당황하며 몸을 피하던 한 친구의 얼굴 표정이 아직도 가끔 생각나 부끄럽다.

어쩌면 공동체 안에서 함께 부딪히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이와 유사한 모습이 아닌가 생각된다. “잘 지내고 있지?”라고 질문하지만, 그저 “잘 지내고 있어”라는 답 이외에 다른 어떤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삶.

실제로 비슷한 경험들이 많이 있다. 반복적으로 늦는 지체에게 “무슨 일 있어? 좀 일찍 와~”라고 말을 건네었을 땐, 이미 늦었다. 자신의 속에 가득 담아놓은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을 땐, 내가 감당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들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요즘은 누군가에게 “잘 지내고 있느냐"라는 말을 묻기까지 나도 모르게 심호흡을 고르고, 마음을 준비하게 된다. 혹시, 그 어떤 이야기를 듣더라도 놀라지 않고, 성실하게 반응하리라 다짐하면서.

이렇게 겁도 많고, 연약한 나에게 성경은 무어라 말씀하실까.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2)

이미 너무나도 무거운 짐이 많다고 느껴지는 내 삶을 향해, 다른 사람의 짐을 지라니... 그리고 그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을 성취하는 길이라니... 한편으로는 설레지만, 사실 이런 상황들이 우리의 현실 속에 쏟아져내릴 때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못 본척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그러나 예수를 주라 고백하고, 그분의 몸 안에 들어와 교회를 이룬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머리가 되어주시며, 그 몸의 지체된 우리들에게 서로를 의지하고 자라나, 예수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라고 초대하신다.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골 2:19)

그 연합하여 주께서 자라나게 하시는 그 과정 속에 우리는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아야한다. 결코, 공동체와 지체들의 도움을 받는 길은 더 저열하지 않다. 이에 대하여 저명한 기독교 상담 심리학자인 헨리 클라우드와 존 타운젠드의 공동저서인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성장하는가?>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창조 질서에 속한다. 관계로부터의 독립은 곧 하나님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분의 몸 안에 거하시기 때문이다. 아울러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성장하게 하시는 방법을 도외시 하는 것이나 같다 (p.176)

우리는 끊임없이 독립성(independent)을 추구하라고 말하는 세상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하여 의존(dependent)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는 눈에 보이는 그리스도의 몸인 서로에게 의존함을 연습함으로 우리 몸에 깊이 체화되어진다. 스스로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이를 공동체와 함께 싸워가며, 서로가 처한 어려움들에 대하여 깊이 공감하고, 함께 돕는 삶. 이것은 우리의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일까?

왜 우리 공동체 안에는 마음 깊이 외로워하며 누군가가 다가와주길 고대하는 개인(individual)들이 모두 따로 존재하는 것일까? 그저 서로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짐이 되지 않는 나 혹은 도움이 되어야하는 나’를 추구하다가 어쩌면 우리는 머리되신 분께서 배우라고 허락하신 귀한 교실에서 모든 것을 놓쳐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른 이의 짐을 나와 우리의 짐으로 여기고 함께 나눠지는 것은 분명 쉽지 않다. 하지만 내가 진 짐들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의 짐을 함께 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이 갈라디아서의 기자가 말하는 “서로 짐을 지라”의 정신이라 믿는다.  최근 찬송가 “예수 따라가며”를 다시 고백하다가 큰 위로와 도전을 받게 되었다.

남의 짐을 지고 슬픔 위로하면 주가 상급을 주시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항상 복 내려 주시리라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은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로다.

바라기는,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 분의 발자취를 따라 누군가의 삶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진심을 담아 “How are you?”라고 물을 수 있는 우리 공동체가 되길, 그리고 누군가의 그 질문에 각자의 진실한 마음을 고백하고 의존함을 연습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되길 기도한다.

글 : 전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