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3년의 공생애 기간 동안에 어디를 가든지 복음을 가르치셨다. 알고 있겠지만 ‘복음’福音이라는 단어는 ‘좋은 소식’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가르치셨다. 그뿐 아니라 친히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이 되셨다.
복음서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예수님이 주린 자들을 먹이셨고, 가난한 자들을 돌보셨으며, 사회의 가장자리로 내몰린 사람들의 존엄성을 회복시켜주셨고, 악한 영들을 몰아내셨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응당 따라야 할 가장 높은 모범이요, 본보기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방향적 의미에서 어떤 길의 동쪽이나 서쪽으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라기보다 예수님이 열중하셨던 것에 똑같이 열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우리가 이쪽으로 가는가, 저쪽으로 가는가, 혹은 다른 어떤 쪽으로 가는가 하는 것과 무관하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어디를 가든지 다른 사람에게 좋은 소식이 되느냐 되지 못하느냐 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이 되고 있는가?” “나는 내 영향력의 범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이 되고 있는가?” 나는 매일 나 자신에게 이 질문을 한다. 그리고 때로는 나의 정직한 대답에 기뻐하기도 하고 아쉬워하기도 한다.
이제 똑같은 질문을 당신에게 하겠다. “당신은 당신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는 사람에게 좋은 소식이 되고 있는가?”
여기서 내가 ‘사람에게 좋은 소식이 되는 것’이라는 말을 할 때, 그것은 곧 소망과 기쁨과 평화와 인내와 친절과 절제와 사랑으로 우리 일상의 환경을 가득 채우는 것을 뜻한다.
물론 우리는 인생의 환경을 좌우할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주변 환경에 영향을 끼치는 방법은 절대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사람들은 당신과 함께 있을 때 불안해하고 긴장하는 경향이 있는가? 아니면 당신은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편안하게 해주는 성품을 갖고 있는가?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 앞에 있는 사람들을 깔보는 듯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하는가?
아니면 공격적이고 방어적인 진술들이 비집고 들어올 자리가 없는 진솔한 대화를 이어가는 어조로 말하는가?
어떤 사람이 잘못하여 죄에 걸려 넘어졌을 때, 당신에게 말하면 사랑의 진리를 대면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여 당신에게 비밀을 털어놓는 경향이 있는가? 아니면 당신에게 말해보았자 가혹한 판단과 비난만 받으리라는 것을 알기에 숨기려 하는가?
물론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이 되고 있는지 그렇지 못한지를 이런 몇 가지 질문들로 완전히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당신이 나와 다르지 않다면 이 몇 가지 질문에 정직하게 대답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충분히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좋은 소식이 되고 있는가? 우리는 예수님이 아니다. 우리들 가운데 그 누구도 이 땅에 다시 태어난 예수님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언제나 좋은 소식이 될 수는 없다. 이는 명명백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핑계로 위의 질문에 대한 답을 기피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다시 한 번 묻겠다. ‘당신은 인생길에서 다른 사람에게 좋은 소식이 되고 있는가?’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 마태복음 9장 35절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 마가복음 1장 15절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 로마서 10장 15절
† 기도
주님, 나의 모습을 통해서 다른 이들에게 좋은 소식이 되게 하시옵소서.
선한 영향력을 지닌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적용과 결단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이 되고 있습니까?
당신의 모습을 통해 예수님의 향기가 퍼져나가기를 기도하며 결단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