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꼭 해야 할 일들을 향해 달려가지 않는다. 대신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도주한다. 우리의 논리로는 그렇게 도주하는 것이 타당하다. 말이 된다. 완벽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기억하는 순간, 우리에게 상처를 준 가해자에게 가서 자비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임을 기억하는 순간, 유일하신 하나님에게서 도망치려고 애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깨닫게 된다.
요나는 도망쳤다. 도망쳤을 때는 좋아지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실상은 더 악화되었다. 바람과 풍랑은 더 맹렬해졌고, 배는 요동했고, 갑판에 부딪치는 흉흉한 파도는 사나웠다. 그러다가 마침내 도망자 요나는 발각되었다.
그는 자신의 도주 행위를 하나님께서 모르실 리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잔뜩 위축된 채 배 밑창에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발각되었을 때는 행동할 용기를 얻었다. 자신이 즉각 행동하지 않는다면 배에 있는 사람들이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행동했다. 자백했다. 모든 것이 다 자신 때문이라고 실토했다.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그들이 풍랑을 만난 것이라고 자인했다. 그는 자신을 배 밖으로 던지면 살 수 있을 거라고 선원들에게 말했다.
그렇다. 그는 죽을지 모른다. 그러나 만일 그를 하나님의 진노에 넘겨주지 않으면 그들 모두가 죽게 될 것이었다.
‘말’은 힘이 있다. 말에는 우리를 진리와 자유로 이끄는 힘이 있다. 나는 그것을 평생 믿어왔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는 말씀을 우리 모두 굳게 믿고 있지 않은가? 과거의 아픈 상처를 덮어두는 대신 직접 대면하여 말하면 진실에 이를 수 있고, 진실에 이르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
쓰라린 과거로부터 영원히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 역시 도주를 멈추었기에 지금 여기에 있다. 내 삶에 아버지가, 그보다는 아버지의 삶에 내가 복귀하기 시작했다. 더불어서 오랫동안 미뤄온 참된 여정, 즉 용서의 길 걷기도 시작되었다.
사실 나는 이 여정을 원하지 않았다. 나는 바쁜 사람이다. 저자이자 편집자이고 강사이며 여섯 아이의 엄마이며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따라서 내 인생에 피해를 주는 것 말고는 아무 도움이 된 적 없는 노인에게 내줄 시간이나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만일 “순종하라”는 내면의 강력한 촉구를 경청하지도, 주목하지도 않았다면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과 마음을 체험하는 소중한 기회를 분명 놓치고 말았으리라는 것을. 당신도 그런 체험을 할 수 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 요한복음 8장 32절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 요한복음 12장 46절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 시편 32장 3절
† 기도
주님, 쓰라린 과거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합니다. 먼저 내 안에 용서하지 못한 것들을 바라보게 하시고, 용서하라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더이상 피하지 않고, 말로 고백하고 용서를 행하게 하여 주옵소서.
† 적용과 결단
아직도 내 안에 과거의 아픈 상처들이 있습니까? 주님께 나아가 고백하고, 용기내어 직면해보세요. 용서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성품을 체험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