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애타게 몸부림치는 마음을 몇 번이고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시편 기자 다윗에게서 위로와 깨달음을 얻는다.
그는 시편 18편에서 원수들에게서 안전하게 구해주신 하나님께 열렬한 감사의 찬송을 쏟아낸다. 내가 저항하기 어려운 자기연민과 교만의 원수에게 무자비하게 쫓기고 있다고 종종 느꼈듯이, 다윗은 사울과 많은 전사에게 무자비하게 쫓기고 있었다. 내가 그랬듯이, 다윗도 그렇게 원수들에게 쫓기는 삶에 지쳐 있었고 매일 생존을 위해 싸우는 삶에 기진맥진 힘이 바닥나 있었다.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시 18:4-6)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을 바로 알았을까? 아니면 응답해주시기를 간청하고, 소망하고, 바라고, 애원하면서 몇 개월을 보냈을까? 다윗은 자신의 부당한 처지에 관해 하나님께 불평하지 않았을까? 자기를 구해주어야 한다고 하나님께 강력히 요구하지 않았을까?
어둠 가운데 누워 하나님과 씨름하고, 흐느끼고, 그 침묵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아니면 바울처럼 세 번 구한 뒤에 품위 있게 단념했을까?
왠지 나는 다윗이 바울처럼 했을 것 같지는 않다. 다윗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오랫동안 진흙탕에서 뒹굴었을 것 같다. 절망감이 끊임없이 그의 곁을 서성댔을 것이다. 잠에서 깨면 불안으로 심장이 파도치듯 쿵쿵거리고, 근심 걱정으로 가슴이 무거운 아침을 숱하게 맞는 동안 다윗은 그의 미래를 두려워했을 것이다.
장담하는데, 다윗도 나처럼 하나님을 비난했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이 나를, 그분의 선량한 딸인 나를 실망시켰다고 확신했다. 나는 하나님이 나를 신실하게 대하지 못하고, 보살펴주지 못하고, 그분이 약속한 놀라운 인생을 주지도 못한다고 확신했다.
나의 부르짖음이 하나님의 귀에 도달한 때와 하나님께서 나에게 극적으로 대답하신 때 사이에 왜 침묵이라는 간격이 있었을까? 그 침묵은 나의 잘못 때문이었을까? 미친 듯이 광분해 들어가면 응답받을 권리를 얻기라도 하듯, 믿음이라는 그 신비로운 감정을 충분히 불러일으켰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였을까?
아니면 어떤 사람들 말대로, 인생의 태풍을 벗어나려면 그 전에 교훈들을 잘 배워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였나? 그래서 하나님께서 엄한 코치처럼 우리가 올바르게 이해하기를 기다리고 계신 것일까? 그게 이유일까?
오히려 합당한 말들을 하고, 올바른 단계를 따르고, 그 ‘옳은’ 감정들을 분출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과 아예 무관할 수도 있지 않을까?
때때로 사람들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면 나는 다시 말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들이 전달하려는 내용을 알아들을 수 있게 문장을 다르게 고치고 다른 단어들을 써서 말해달라고 부탁한다. 나는 그들의 눈을 주시하고, 표정을 살피고, 입술의 움직임을 읽어내고, 조금이라도 실마리를 얻으려고 엄청 애쓴다. 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이해하고 싶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합당한 말이 아니라 합당한 마음인지도 모른다.
해결책을 더듬어 찾고, 애쓰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던 다윗은 자신의 부족함을 통해 마음이 변화되었다.
그때도 나를 돌보셨음을
그가 높은 곳에서 손을 펴사 나를 붙잡아 주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그들은 나보다 힘이 세기 때문이로다 (시 18:16,17)
왜 하나님께서 그를 구해주셨을까? 다윗은 자신의 의로움, 신실함, 온전함, 깨끗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의 떳떳함과 겸손함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건져주신 사건과 관계있다고 확신했다(시 18:20-24).
그러나 나는 겸손하지 않았다. 나는 하나님이 나를 망쳐버렸다는 분노로 가득했다. 나를 위해 아무 일도 행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에게 상처받아 모든 것을 다 하나님 탓으로 돌렸다. 나는 내가 선량하고 귀먹어 마땅한 여자가 아니라고 믿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응답을 늦추셨는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응답이 지연되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나는 착한 여자라는 자기의가 하나님과 내 귀 사이의 공간에 가득 차 있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내가 변화되기를 기다리셔야 했는지도 모른다.
다이앤 코머(Diane Comer)
세 아이의 엄마이던 스물여섯 살에 진행성 청력 상실을 진단 받고, 두려움과 분노로 믿음을 잃어가던 그녀는 마침내 자신의 '착함' 뒤에서 자기연민과 자기의로 가득한 내면의 악함과 추함을 깨닫는다. 완전히 청력을 상실했으나 그 적막함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 그분의 음성을 듣게 되었고, 이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데 난청인 우리가 어떻게 고요함 속에서 그분의 음성을 듣고 친밀한 교제로 나아갈 수 있는지 자신의 난청 재활 과정에 빗대어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일러준다.
† 말씀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 마가복음 4장 9절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 시편 55장 16, 17절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 잠언 3장 5, 6절
† 기도
주님이 제게 침묵한 것이 아니라 들을 수 없기 때문에 기다리셨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고난속에서 주님을 원망하지 않고 더욱 신뢰함으로 기도하며 나아갈 수 있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 적용과 결단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께 집중하고 들을 귀를 달라고 간구하여 그분의 따뜻한 음성을 듣는 하루가 되기를 결단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