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여행의 계절, 바캉스(vacance) 시즌이다. 여행은 꿈도 못 꾸고 어학원에서 열심히 영어 공부를 했던 그 시절, 원어민 강사로부터 듣고 또 들어도 도저히 구분되지 않았던 단어가 몇 개 있었다. 우선 공을 의미한 ‘ball[bɔ:l]’과 그릇을 의미한 ‘bowl[boʊl]’이었다.
[볼]과 [보울]을 어떻게든 차별화시키기 위해 두 볼엔 잔뜩 힘을 주고, 미간엔 내 천(川)자를 그리며 발음 연습에 매진했던 그 시절의 기억이 새롭다. “공은 멀리 던져야 하니 길게~ 그릇은 음푹 파였으니 입을 오무려서~”
견강부회(牽强附會)격으로라도 발음과 의미의 유사성을 연관지었던 내 나름의 학습법에 걸려든 또 다른 단어가 있었으니 ‘bald[bɔ:ld]’와 ‘bold[boʊld]’였다. 원어민의 발음으로 아무리 듣고 또 들어도 [보올드]와 [보울드]는 내 귀를 간지를 뿐 정확한 의미는 다가오지 않았다.
‘머리가 벗겨진’이란 뜻의 형용사 ‘bald’와 ‘대담한’이란 뜻의 형용사 ‘bold’가 도대체 의미상 무슨 연관성이 있길래 발음이 이렇게 거의 유사하단 말인가.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나는 ‘머리가 벗겨진 사람은 대담하다.’라는 엉뚱한 결론을 내리고 그 단어의 발음을 똑같이 하기로 결정해버렸다. [보올드 is 보울드]
네덜란드 예술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당대 최고의 화가 렘브란트(Rembrandt,1606~1669)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었던 친구 아담 엘스하이머(1578~1610)는 세밀화 동판 위에 정교하고도 아름다운 장면을 묘사하기로 유명한 화가이다.
인물화와 풍경화에도 능했던 엘스하이머는 유럽의 풍경화 발전에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형태의 빛을 연구하여 태양, 달, 횃불, 벽난로에서 나오는 빛의 효과를 자신의 작품 속에 탁월하게 적용했다.
특히 밤의 풍경을 묘사한 그의 작품들은 유럽의 수집가들이 앞 다투어 얻고 싶어 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는데 그 중의 단연 최고의 작품은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는 <몰타의 사도 바울>이다.
엘스하이머가 1,600년까지 로마에 체류하면서 사도행전 28장에서 소재를 따온 이 작품은 난파를 당해 몰타 섬에 체류하게 된 사도 바울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밤하늘에는 번개가 번쩍이고, 폭풍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횃불이 절벽의 꼭대기에 밝혀 있고, 일렁이는 바다 위에 부서진 배의 유해가 이리저리 떠다니고 거대한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 부서진 모습이 절묘하다.
그림의 앞쪽에 모닥불 주위에 모인 사람들과 섬 원주민의 도움을 받아 젖은 옷을 말리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모닥불 옆에 서서 위험한 독사를 움켜잡고 있는 사도 바울의 헤어스타일이 유독 눈에 띤다. 민숭민숭하게 다 벗겨진 대머리이다.
철저한 신학적 고증을 바탕으로 그려진 당대 유명 화가의 그림은 그 자체가 역사이다. 전승되는 여러 기록물 중 「바울과 테클라의 행전」(Acts of Paul and Thecla)에 따르면 “바울은 키가 작고, 대머리이고, 다리가 휘었고, 몸이 다부지며, 미간이 아주 좁고, 코가 긴 편이었다.”고 한다.
외모지상주의로 대변되는 현대 사회에서 이 정도의 외모를 가졌다면 최악이 아닌가! 개인 간의 우열(愚劣)뿐 아니라 인생의 성패(成敗)까지 좌우한다고 믿어 스펙 중에서 가장 열을 올린다는 이 루키즘(lookism)은 마치 몰타섬의 거센 폭풍우처럼 이 시대를 덮친 지 꽤 오랜 된 사회풍조가 아니던가!
옥중에서 기록된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감사와 찬양, 환희의 기쁨이 넘친 편지 글 빌립보서에는 사도 바울의 인생관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바울이 결혼을 포함한 취업, 이 땅에서의 모든 기득권을 해(害)로 여기는 이유를 적시해 놓은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주님인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그분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심지어 그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빌3:8)
한의학에서는 담(膽)이라고도 하는 쓸개를 대담한 용기를 내는 장기(臟器)로 설명한다. 굳이 한의학의 설명을 빌리지 않더라도 담이 크다고 하는 것은 용기가 있는 것이고, 쓸개가 빠졌다는 것은 용기가 없이 비겁하고 줏대가 없다는 말임을 누구나 다 안다. 3차에 걸친 사도바울의 전도 여행의 거리가 자그마치 1만 7천 킬로였다고 한다면 그의 쓸개(膽)는 정말 상상을 초월한 크기였음이 분명하다. 안락한 가정이나 세상의 부귀영화 따위에는 추호(秋毫)의 관심도 없었던 대머리 총각은 그렇게 담대한 여행으로 생을 마쳤다.
혹시 ACTS 29장을 쓰겠다고 자임(自任)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는 반드시 ACTS 28장의 마지막 절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죽을 고생을 하며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사도 바울의 여행 목적이 적혀 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힘든 그 여행을 끝까지 마칠 수 있게 한 원동력 말이다. 그 여행은 담대하게 선포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었고, 자세히 가르치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 여행이었다.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그 아름다운 여행은 내 영어 발음으로는 거의 구분이 되지 않는 ‘대머리(Bald) 총각의 대담한(Bold)한 여행’이었다.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가르쳤습니다.”(Boldly he preached the kingdom of God and taught about the Lord Jesus Christ.) (행2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