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곽상학의 말과 말씀

[곽상학의 말과 말씀] 음바페 열풍과 음펨바 효과

유난히 폭염으로 뜨거웠던 1998년 7월, 개선문부터 콩코드 광장까지 꽉 들어찬 대규모 인파가 뿜어내는 열기로 프랑스는 지구상에서 가장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자국에서 치룬 월드컵 대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데다가 우승까지 거머줬으니 온 나라가 그야말로 잔칫집이었다.

그 축제의 해 연말에 한 아기가 태어났으니 훗날 프랑스 축구를 이끌어 갈 ‘음바페(Kylian Mbappe)’가 그 주인공이다. 수많은 언론으로부터 ‘제2의 펠레’란 찬사를 받으며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20년 만에 조국의 품에 우승컵을 안긴 음바페는 프랑스의 차세대 축구 영웅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은 끝났지만 입추의 여지가 없는 샹젤리제 거리는 아직도 수많은 삼색기와 축하 연막이 가득하다. 프랑스는 이 젊은 영웅에게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수여하고, 부와 명예를 안겨줄 것이다.

그런데 올 해 열아홉의 이 선수는 사실 이 대회에서 냉탕과 열탕을 오갔다. 벨기에와의 준결승전에서는 비신사적인 행동으로 축구팬들의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질책 뒤에 더 큰 박수와 칭찬을 보내준 팬들에게 음바페는 크로아티아와의 결승전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쐐기 골로 보답했다.

이처럼 일본 작가 츠지 히토나리의 소설인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Between Calm And Passion)’처럼 노련한 냉철함과 젊음의 패기 사이에서 이 어린 선수는 성장하게 될 것이다.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레 블뢰(Les Bleus, 푸른 군단)’의 특징은 이주민 유망주 발굴과 인종 차별이 없는 외인부대라는 사실이다. 인재 육성을 위한 포용 정책과 긴 안목이 프랑스 축구를 뜨거운 열정으로 유지시키는 결정적 비결이었다.

일반인들은 쉽게 체험하지 못하는 곳들을 연예인들이 직접 오지를 찾아가 살아보는 방송 프로그램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에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정글의 법칙 in 남극'에서는 족장 김병만이 남극점 베이스캠프에서 영하 29도에 카메라가 꽁꽁 얼어붙자 온몸으로 느끼는 한기에 뜨거운 물을 하늘에 뿌리는 장면을 연출했다.

순간 공기 중에 물이 얼어붙었고 김병만은 “겨울왕국의 엘사는 남극에서 뜨거운 물 장사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해 큰 웃음을 샀는데, 이것이 바로 ‘음펨바 효과(Mpemba effect)’ 이다. 오랜 시간 동안 물리학의 난제 중 하나였던 이 효과는 ‘뜨거운 물이 차가운 물보다 더 빨리 어는 현상’으로 일반적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지만 엄연히 우리 주위에서 관측되는 과학적 현상이다.

굳이 수소결합이니 공유결합이니 하는 전문 용어도 필요 없다. ‘많은 에너지를 축적한 뜨거운 물이 냉각 시 더 빠르게 에너지를 방출하기 때문에 빨리 언다.’는 이 과학적 현상을 교조적 수단으로 활용해 금방 뜨거워졌다가 빨리 식어버리는 냄비 근성을 비판하거나 ‘뚝배기처럼 식지 말고 꾸준해지자!’는 틀에 박힌 결론으로 마무리 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먼저 된 사람이 나중 되고 나중 된 사람이 먼저 된다고’ 하신(마19:30) 예수님의 말씀이 진한 파동으로 느껴질 뿐이다.

“나는 네 행위들을 알고 있는데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나는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바란다. 네가 이렇게 미지근해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으니 내가 너를 내 입에서 뱉어 낼 것이다.”(계3:15~16)

지리학적으로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의 마지막 교회가 있었던 라오디게아(Laodicea)는 금, 옷, 안약 제품으로 유명한 지역이었던 반면에 물 사정이 썩 좋지 않았다. 그래서 수로를 통해 16㎞ 떨어진 골로새에서 차가운 음용수를 끌어왔고 9㎞ 떨어진 히에라볼리에서 뜨거운 온천수를 끌어왔다.

그런데 차가운 물이나 뜨거운 온천수가 라오디게아까지 오는 동안에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한 물로 변했고 그 물을 마시는 사람으로 하여금 구토를 유발시켰다. 차가운 것은 차가운 대로 시원한 냉수처럼 유익을 주고, 뜨거운 것은 뜨거운 대로 온천수처럼 유익을 주지만 이도 저도 아닌 자세를 취하는 ‘미지근함(lukewarm)’은 주님의 책망의 대상이었다.

문 밖에 서 있는 예수님 성화로도 유명한 구절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계3:20)는 불신자에게 예수를 영접하라고 권면하는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 보시기엔 문제가 많은 교회였지만 자신들 스스로는 괜찮다고 여기고 있었던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준엄한 경고이다.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 사이에서 이도저도 아닌 신앙으로 스스로 부요하다고 안주하고 있는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주님과 세상 사람들에게 구토 유발자가 되지 않기 위해선 다른 방법은 없다. 견고한 믿음과 옳은 행실과 영적 분별력을 갖추어 첫사랑을 회복하는 수밖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