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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가정

가정 안, 섞인 신앙에 주의하라!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입시나 이사하기전 용하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러 가고, 징크스라고 하며 어떤 것에 매여 있기도 하고..

나 혼자만 돌보면 되던 청년의 시절과 달리 가정안의 많은 일들로 인해 걱정과 불안 혹은 조상 대대로 하는 습관이라는 이름으로 주님보다 더 의지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제 깨어 분별하여 주님이 싫어 하시는 것에서 떠나는 주님의 가정 되기를 축복합니다.

연세가 많은 권사님이 한 분 계셨다.
권사님의 손주 돌잔치에 나도 초대받았다. 먼저 예배가 진행되었다. 이어 돌잡이와 집안 어르신들의 덕담이 이어졌다. 그 내용이 성경과 미신 사이에서 아슬아슬했다.

식사하는 도중 나는 인사를 건넸다.
“권사님, 축하드립니다. 손주가 아주 잘생겼네요!”
“그려! 다 삼신할매가 점지해주신 덕이지!”
나는 놀랐다. 반백 년 신앙생활하신 분이 갑자기 삼신할미 이야기를 꺼내서. 내 할머니도 원래는 불자셨다.
그래서 삼신이 무엇인지 나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부처를 철학자가 아닌 신으로 보는 신관에서 나온 명칭이다(부처는 세 가지 몸, 즉 법신, 보신, 응신을 갖고 있다는 신앙).

삼신할미는 그 삼신, 즉 부처가 통제하는 여신이다. 무속신앙과 불교신앙을 섞어 만든 잡신이다.
“네? 권사님, 삼신할미라니요? 그건 미신이에요. 그런 존재는 없어요.” 그러나 권사님은 내 말을 듣지 않고 역정을 냈다.
“뭐? 그런 말 말아! 다 우리 하나님이 삼신할매를 통해 이 떡두꺼비 같은 손주를 점지해주신 게지!”

순간 주변이 다 조용해졌다. 함께 가셨던 다른 목사님 한 분이 웃으며 우리 사이를 중재하셨다. 나는 그 권사님과 대화를 더 이어갈 수가 없었다.
섞인 신앙 이 권사님의 신앙은 순수하지가 않았다. 세속적인 생각들과 혼재된 믿음이었다. 한마디로, 섞인 신앙이었다. 사람의 몸에 개의 심장이나 고양이의 발을 이식할 수 없는 것처럼 교회에는 예수님 이외의 것을 섞어 넣을 수 없다(《끝까지 가라/송준기》, 54-58쪽).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시고, 우리는 그 지체들이다(엡 1:22, 23). 교회는 예수님의 사람들을 통해 하나 되며 섞이지 않고 온전해진다. 교회 신자들의 예수님을 향한 순수한 마음이 교회를 교회 되게 한다.

순수성은 교회를 이루는 성도의 특징이다. ‘하나님’이라는 호칭만 봐도 그렇다. 그분은 하늘에 계신 존재라서, ‘하늘―님’, 하느님이 아니다. 한 분이신 존재로서 그 무엇과도 섞임이 없는 ‘한―님’ 그래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라는 명칭 안에는 기독교 고유의 신론과 신앙고백이 들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양한 우상을 끌어들인다. 교회를 오염시킨다. 그러면 하나님이 싫어하신다.

섞인 신앙에 대해 성경은 경계한다.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다른 신을 함께 섬기면 그것이 곧 오염이자 영적 간음이 된다.이것은 삼신할미를 믿으며 하나님과 삼신을 혼동하여 신앙생활하던 그 권사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우리는 대부분 섞인 신앙을 가지고 산다.

연애와 결혼도 예외가 아니다. 그중 하나는 ‘운명론’이다.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배우자가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운명의 짝을 찾아 연애 특강, 결혼 특강을 하면 꼭 받는 질문이 있다. ‘내 운명의 짝이 누구인지’와 관련된 것이다. 그러나 질문 자체가 미신적이다.

주님이 의도하신 것은 특정 배우자라기보다는 결혼 그 자체였다. 그리고 운명론이 맞다면 라멕의 일부다처나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멋대로 결혼한 스토리 등은 말이 안 된다(창 4:19 ; 6:2).  또한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길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허락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먼저 창조주 하나님이 계신다. 그분은 자신의 피조물인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하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스스로 무엇이든 결정하고 바꿀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다. 물론 전지하신 하나님은 인생의 미래까지도 다 아신다.하지만 그것은 결정된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행동에 대한 결과를 아는 지식이다(밀러드 J. 에릭슨, 《Christian Theology》, 921-939쪽).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는 피조물인 주제에 창조주를 떠날 수도 있을 정도로 무한하다(물론 그에 대한 책임 역시 본인이 진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존재다. 하나님과 닮은 주체적 존재다. 다만 결혼이라는 인생의 원리가 있고, 그에 대한 배우자 선택은 사람에게 달렸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결혼 본래의 모습에 맞는 배우자를 선택할지 말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배우자 선택에 있어서 하나님의 간섭을 받아들이지 않는 불순종의 길로 들어서는 것도 인간에게 달렸다.
<숨기지 마라>송준기p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