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남편은 사 남매의 아빠지만 사실은 별로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결혼 전에 제가 친정 조카가 예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며 제게 우상숭배라는 죄목을 덮어씌우며 아이의 재롱에 냉소를 던지던 사람이었죠.
그러나 자기 앞으로 착착 배달되어오는 아들 둘과 딸 둘을 안고 물고 빨면서 저보다 한 술 더 뜨는 남편을 보면서 ‘이 사람도 정상이 되어가는구나’ 하며 안심했지만 여전히 그가 적응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아기가 마구 뿜어내는 액체와 냄새와 소음, 즉 오물과 울음입니다. 말 잘 듣고 깨끗한 아기만 예뻐하겠다는 건데 이게 어디 가당키나 한 소리입니까. 경악에 가까운 기겁을 하며 온몸으로 구역질을 하는 남편을 보면서 ‘이건 태생적인 한계구나’라고 여기고 네 아이 뒤치다꺼리는 제가 다 했습니다.
그런데 또 남편은 “왕왕” 울어대는 아기의 울음소리와 “깔깔깔”웃는 아기의 웃음소리와 “엄마∼아빠∼” 부르는 아기 목소리가 어떤 날에는 귀에다 누가 송곳을 찌르는 듯한 심한 통증을 느끼는 이상한 병까지 앓고 있었습니다. 함께 부모 노릇 하기 참 힘든 남편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아이 넷을 돌보는 것도 벅차건만 아이들의 울음과 웃음소리까지 관리하게 만드는 남편이 얼마나 얄미웠는지요. 저 혼자 속으로 아빠로서 낙제점수를 매기고 있는 사이, 시간은 고맙게도 단 1초도 멈추지 않았고 아이들은 생각보다 빨리 자랐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주지 않았다면 저는 남편을 오해만 하며 살았을 겁니다. 큰아이가 훌쩍 자라 십대 청소년이 되면서 제가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안팎에서 생겼습니다. 그럴 때 저 멀리서 청결과 침묵 가운데 거하는 줄 알았던 남편이 나타나 문제를 해결해주는데 거의 슈퍼맨 수준이었습니다.
한 번도 당해보지 않았던 일에 대한 대처와 해결 방법 그리고 아이의 마음을 만지고 훈계와 교훈을 오가는 균형 잡힌 양육의 모습에 저와 아이들은 감동받지 않을 수 없었죠.
코흘리개의 아빠로서는 낙제였지만 방황하는 청소년의 아빠로서는 전국 수석감인 남편을 보며, 그동안 야박한 아빠라는 생각에 많이 째려봤던 제 눈흘김을 회개했답니다.
남자가 남편이 되고 아빠가 되는 것이 어찌 간단하고 쉬운 일이겠습니까. 오줌 싼 기저귀를 구역질을 해가며 갈아주던 날도, 엄마가 없는 시간에 화장실에 들어간 아이의 엉덩이를 씻어주는 날도, 그에게는 훈련과 거듭남의 시간이었는데 제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그에 대한 칭찬도 감사도 없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서로 다른 스타일의 차이 때문에 언쟁도 많았고 토론도 길었지만 이 모든 것이 우리 아이를 잘 키워보자는 데서 출발한 것이므로 서로 받아들이고 맞춰나가기 위해 함께 노력했습니다.
부부라는 관계를 맺어나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던 반면 부모라는 관계에서 많이 어려웠던 건 다음 세대를 위한 각자의 욕심 때문이었을까요? 아직도 진행 중인 우리 부부의 올바른 부모 되기 훈련에 땀과 눈물과 수고를 아끼지 않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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