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절기별 묵상

동생하고 넘 심하게 다투네요!

형제 우애 가르치기

부모에게 있어서 형제간의 다툼만큼 마음 아픈 일이 없지요. 그런데 성경의 예가 있다시피 형제간에는 경쟁과 비교가 있기 마련인가 봅니다. 한 부모 아래서 공평하게 자란다고 하지만, 아이들의 성장에 따라 더 집중해줘야 할 때가 분명히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소외받는 느낌을 받는 다른 아이들이 갖는 정서에 대해서 부모는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합니다.

때때로 저는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사모님, 아이들이 다 예쁘지만 그래도 특별히 더 예쁜 아이가 있죠?”

질문의 형식이나 저한테 전달되는 것이 그 사람의 확신이기에 저는 순간 황당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드리죠. 단연코 이 질문 앞에서 한 치도 부끄러움 없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엄마 되게 해주셨으니까요.

“제 품이 작아서 고민을 했을지언정 어떻게 더 예쁜 아이가 있고 덜 예쁜 아이가 있겠어요.”

그러면 제 귀에 더 놀라운 말이 들립니다.

“저는 그렇던데요.”

부모로서 만약 그랬다면 회개합시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공평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세상의 여러 민족 가운데 가장 밋밋하고 딱딱하게 생겨서 잔나비라는 별명이 붙은 우리가 뭐가 예뻐서 복음과 구원을 주셨단 말입니까. 공평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우리가 자녀로 주신 겨우 둘 셋 많아야 넷 다섯을 공평하게 사랑하지 못한다면 부모로서 자격이 없다고 봅니다. 순간적으로 유독 한 아이가 눈에 예뻐 보일 때가 있지만 그것은 다른 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자 다른 순간에 다른 모습으로 자기만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는 제 자식들을 향해 차별적인 사랑을 확신하는 그런 질문을 더는 우리가 주고받을 대화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해야 할 마땅한 일이 공평하게 똑같이 사랑해주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못하다면 가슴을 치고 회개하며 가인과 아벨, 에서와 야곱, 요셉과 형들의 저주가 우리 집에 없기를 눈물로 구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그 시작이 부모로부터임을 철저히 인정하고 회개해야 할 일이지, 마치 피해갈 수 없는 부모의 한계인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형제, 자매, 남매 할 것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귀한 친구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 귀한 친구로 주신 형제요, 자매요, 남매라고요. 아직 어리지만 동생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잘 알려주고, “네가 이런 대접을 받는다면 어떤 기분이겠냐”라고 물어보고, 잘못한 건 분명히 잘못하는 거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어떤 모양으로든지 폭력은 허용하지 않습니다. 폭력은 증오를 낳습니다.

친구가 놀러 와서 동생이 좀 비켜줄 수는 있지만, 형이 노골적으로 동생을 찬밥 취급하는 것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그동안의 가르침이 허사가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귀한 친구는 언제 어디서나 가장 귀한 친구입니다. 아직 어려서 형들의 놀이에 낄 수 없다면 엄마가 나서서 동생을 맡아주고 형은 또래 친구와 거침없이 놀 수 있도록 배려해주어야겠지만, 동생을 귀찮게 따라다니는 껌딱지 정도로 생각하는 건 곤란합니다. 여러 상황을 지혜롭게 엄마가 잘 지도해주면 형과 동생과 그들의 친구들과의 적당한 선을 아이들이 스스로 찾아낼 것입니다.

형제간의 시기와 다툼

참 어려운 문제이지만 형제간의 다툼은 아주 많은 정성을 기울여야 할 주제인 것은 확실합니다. 길을 잘 잡아주어야지요. 기도하면서 순간순간 지혜를 구하면 성령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우선 큰아이의 마음을 만져주고 위로해주고 공감해주면 사실, 형제간의 다툼은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모의 권위를 큰아들에게 위임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없을 때 큰아들은 부모의 권위로 동생들을 다스립니다. 큰아들이 아직 미숙해서 좀 오버를 하는 경우, 동생들의 입이 튀어나온 걸 보지만 그래도 그 자리에서 형을 야단치지 않습니다.

제가 있는 데서 동생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만 아는 행동을 하면 야단을 치지만 이 역시, 형의 권위를 생각하여 아이가 클수록 조심스러워지더군요. 이런 식으로 내려가면 제일 억울한 게 막내딸일 수 있겠지요. 하지만 막내이기에 받는 무제한의 사랑을 생각한다면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힘 있고 머리 좋은 형이 사랑 많은 통치자가 되어 보호하고 가르치고 함께할 것이며, 동생들은 형을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첫아이를 잘 양육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첫아이와 함께 부모의 가치관을 많이 나누고 공유하며 서로 탄탄한 신뢰를 쌓고 있으면 동생이 태어나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흔히 동생을 보는 형의 마음을 첩을 보는 본처의 심정이라고들 하는데 말장난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처와 첩 사이는 결혼관계를 벗어난 죄로 인해 파생된 관계이고, 형과 동생은 하나님께서 가정에 약속하신 복이기 때문입니다.

유순하던 큰아이가 동생을 보고 변해버렸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는 이미 큰아이의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것입니다. 부모나 다른 가족들이 상대적으로 어린 아기에게 마음과 눈이 팔려서 어린 것만 쪽쪽 빨고 있었던 그 잠깐 동안에 큰아이는 섭섭했던 거죠. 감정을 다루는 법을 모르는 아이의 변한 모습에 놀라서 ‘이 아이가 그런 아이가 아니었는데, 이제라도 매로 다스려야 하나’ 하고 고민하지 말고 사전에 조심하십시오. 상대적으로 크지만 사실은 아직도 어린 형을 좀 더 생각하고 배려하고 사랑해준다면 왕자들의 난은 시작되지 않을 겁니다.

저는 첫째랑 놀고 있다가 둘째를 봐줘야 할 때 약 3분에 해당하는 쇼를 했습니다. “앙” 하고 둘째가 우는 소리가 들리면 깜짝 놀란 얼굴을 하고 큰아이를 쳐다보는 거죠. 한 5초간 큰아이 얼굴에 여러 생각이 지나가는 게 보입니다.

‘아이, 엄마랑 더 놀고 싶은데… 쟤는 또 왜 우는 거야? 엄마, 그냥 우리끼리 놀아요.’
뭐 이런 생각들이죠. 제가 묻습니다.
“아기가 왜 울지? 혼자 있는 게 싫어서 우나? 우리 가볼까?”
그러면 큰아이는 씩 웃으면서 뭔가 신나는 일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 얼굴로 바뀌었죠. 같이 가서 누워 있는 아기에게 말을 겁니다.
“왜 울어? 혼자 있는 게 싫어? 우리랑 같이 놀고 싶니?”
“(아기 목소리로 내가 말하는 거죠)네, 엄마랑 형아랑 같이 놀고 싶어요. 나도 끼워주세요.”
“응~ 그랬구나!”
큰아이를 보면서 말하죠.
“우리 얘, 끼워줄까?”
그러면 고개를 끄덕끄덕하죠.
“그럼 네가 얘 좀 보고 있어. 엄마가 우유 타 올게.”

큰아이와 이러는 동안 둘째는 숨이 넘어가게 울었지만 저는 큰아이를 위해서 이 정도 배려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연극을 하면서, ‘아기도 나랑 같은 생각이 있고 기분이 있는 한 형제’라는 것을 큰아이에게 가르쳐준 것 같습니다. 매번 같은 캐릭터면 재미가 떨어지니까 바꿔보는 것도 좋습니다. 제가 나쁜 엄마가 되는 거죠.

“아~ 진짜! 쟤 또 운다. 뭐 좀 하려고 하면 울더라? 네가 가서 좀 때려주고 와!”
제가 이렇게 대사를 치면 큰아이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생각지도 못한 엄마의 발언에 충격을 받은 거죠.
“안 돼요~.”
“안 돼?”
“네.”
“너, 형 잘 만난 줄 알아!”
가끔 진짜로 때려주려고 가는 형을 잡은 적도 있긴 합니다만 이렇게 몇 번 하고 나면 나중에는 동생이 울어서 엄마와 노는 시간이 끊어지는 것에 그다지 속상해하지 않았습니다.

출처 : 성경으로 키우는 엄마 | 규장
최에스더
‘성경 먹이는 엄마’라는 첫 책의 제목이 자신의 이름 앞에 줄기차게 따라다니는 것이 여전히 부담스럽다. 하지만 그것은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말씀암송으로 이 험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당당히 살아가길 원하는 그녀의 간절한 마음이 수많은 엄마들에게 전달되어 큰 감동과 깨우침을 낳게 한 귀한 열매이기도 하다. 남편 강신욱 목사(남서울평촌교회 담임)와 2남 2녀(진석, 은석, 진수, 은수)를 키우며, 현재 303비전성경암송학교 강사로 섬기고 있다. 저서에 《성경 먹이는 엄마》, 《성경으로 아들 키우기》, 《엄마의 선물, 기독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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