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절기별 묵상

십자가의 의미

슬픔과 눈물로 얼룩진 세상을 변화시키는, 희망의 상징

기업체들은 로고를 디자인하는 데 막대한 돈을 쓴다. 그들은 기업체의 이미지를 일반 대중의 마음속에 각인시키기 위해 광고업체를 통해 로고를 제작한다. 예컨대 ‘안정성’이라든가, ‘신뢰성’, ‘진보성’, 또는 ‘적극성’과 같은 기업 이미지들이 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런 로고는 업체의 서무용지나 생산제품에, 그리고 기업의 본사나 영업소 등지에서 두드러지게 활용된다.

1980년대 영국 노동당은 점차 인기를 잃어가는 사회주의와의 관련성을 떨쳐내기 위해 오래전부터 사용해오던 붉은 깃발 로고를 붉은 장미로 바꿔버렸다. 붉은 깃발은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의 군대 행진과 같은 바람직하지 못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 영국 사람에게 장미는 더욱 감미롭고 다감한 정서를 자극한다.(전통적으로 영국 사람들은 정원 가꾸기를 사랑하는데 특히 장미를 좋아한다). 국민을 더 사랑하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 호전적인 이미지의 로고를 버리고, 감정에 호소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주는 로고를 택한 것이다.

로고는 어떤 특정 기업이나 단체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주는데, 최소한 사람들이 어떻게 봐주었으면 하는지 말해준다. 그러니 어떤 집단이 교수형을 치를 때 사용하는 목매는 밧줄이나 가스실이나 전기의자를 로고로 채택한다면 완전히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일 것이다.사형 도구를 어느 한 집단의 상징으로 삼는다는 것은 거의 미친 짓일 것이다. 그런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즉각 죽음에 집착하는 변태자이거나 정신이상자로, 아니면 인간의 고통에 탐닉하는 혐오스러운 사람으로 여겨질 것이다. 광고기획사에게 이런 선택은 그야말로 악몽이 될 것이다.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철저하게 망하기로 작정한 기관만이 이런 상징을 택하리라.

그런데 바로 그런 류의 상징이 기독교의 로고가 되어 널리 통용되고 있다. 교회나 기타 기독교 관련건물에서 단지 십자가를 볼 수 있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건물들을 아예 십자가 형태로 건축하기까지 한다. 천주교인들은 위험하거나 위급한 순간에 십자가 성호를 긋기도 한다. 그리스도인들의 무덤에도 십자가를 세운다. 기독교 상징주의의 기원과 발달을 자세히 연구해보면 초기부터 십자가가 기독교 복음의 상징이었음이 확실하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왜 그토록 무섭고 깜짝 놀랄 만한 상징을 선택했을까? 왜 좀더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것으로 선택하지 않았을까? 십자가는 언제나 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어리석은 십자가를 내세우지 않았다면, 기독교는 훨씬 더 호의적인 이미지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신약성경이 기록되던 시대에도 기독교가 십자가 때문에 나쁜 평판을 들었다. 바울은 십자가를 중요시하는 기독교의 특징을 두 부류에서 모두 꺼린다는 점을 간파했는데, 유대인들은 십자가를 수치스럽게 보았고, 헬라인들은 완전히 미친 짓으로 보았다(고전 1:23). (중략)

하지만 십자가에는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십자가 고유의 능력이 있다. 십자가는 기독교가 현실적인 종교임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십자가는 고통과 죽음의 모진 현실과 고투하지 않으려는 인생관에는 귀 기울일 필요가 없다고 단언한다. 십자가가 고통과 죽음을 상징한다는 점은 기독교가 인생의 암담한 현실을 직시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십자가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준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시기 위해 우리가 고난 받고 죽어가는 이 세상으로 들어오셨다.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도 인간의 비극적인 상황에 대한 이 십자가의 능력을 배우고 들어야 할 것이다. 십자가는 감추어진 영광을 상징한다. 십자가는 이 세상에서 직면하는 나쁜 상황에 맞서, 더 나은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한다. 십자가는 늘 슬픔과 눈물로 얼룩진 세상을 변화시키는 희망의 상징으로 서 있다.

이제 십자가를 생각해보라.죽음을 상징하는가? 아니다. 고통을 상징하는가? 아니다. 죽음과 고통의 세상을 상징하는가? 물론 아니다. 죽음과 고통의 세상 한가운데 있는 희망을 상징하는가? 그렇다. 이 어두운 세상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아니 그 이상을 상징하는가? 그렇다! 간략히 말해서 십자가는 이 세상 속에서 역사하는 희망을 상징한다. 하지만 세상은 없어질 것이고, 영생의 소망만이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