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드라마로 읽는 성경》 시리즈의 집필을 마칠 때부터 나는 다음 시리즈 주제를 ‘교회사’로 잡고 있었다. 혹여 ‘웬 뚱딴지같이 교회사?’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성경 일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많은 교회에서 평신도들이 관련 서적들의 도움을 받으며 성경 일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주후 1세기로 끝나는 신약성경 시대에서 끝나지 말고 그 관심의 폭을 교회사 시대까지 더욱 넓혀보기를 제안하는 바이다.
흔히 ‘교회사’라 하면 목회자들에게만 필요한 전문지식이고 평신도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나는 평신도들에게도 교회사가 ‘선택 과목’이 아니라 ‘필수 과목’임을 피력하기 위해 다음 세 가지 이유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교회사는 신약성경 시대가 끝나는 주후 1세기부터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까지의 기나긴 시간 동안 하나님의 교회가 어떻게 성장하고 발전했는가를 다루고 있는 흥미진진한 드라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사는 ‘사도행전 29장’(Acts 29)으로서 성경 역사의 연장선에 있다.
둘째, 교회사는 신구약 성경을 인생의 나침반 삼아 살아가던 우리의 신앙 선배들이 겪어야 했던 좌충우돌의 시행착오들을 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신구약 성경이 ‘이론 편’이라고 하면 교회사는 이것을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실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수천 년 전에 씌어진 성경 말씀을 내가 살아가는 현 시대에 맞춰 바르게 적용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 판단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는 때로는 좌(左)로, 또 때로는 우(右)로 치우치면서 성경적 진리와는 한참 벗어난 실수를 저지르며 살아간다. “역사는 반복된다”(History repeats itself)는 유명한 경구처럼 우리는 시대만 다르지 결국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비슷한 역사가 반복되는 역사의 틀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 점에서 교회사 공부는 역사의 전철을 다시 밟지 않도록 돕는 영적 지혜와 혜안을 줄 수 있다.
셋째, 교회사는 일반 세계사와 함께 ‘역사’에 속하는 학문으로서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손길이 진하게 묻어 있다. 역사를 ‘history’라고 하지만, 크리스천들이 그 첫 글자를 대문자로 바꿔서 ‘History’로 말할 때 그 단어는 더욱 의미심장하다. 크리스천들은 교회사를 포함한 세계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역사는 그분(His), 즉 하나님의 스토리(story)가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교회사 공부는 지금도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내가 개인적으로 교회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선교 단체를 통해 예수님을 믿고 또 군대식의 제자 훈련을 받았던 나는 본과 4학년 졸업반이 되면서 선교 단체를 나오는 문제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유는 졸업을 앞둔 내게 선교 단체에서 가르치는 율법적이고 경직된 신앙 노선들이 과연 성경적으로 옳은가에 대한 신학적 고민들이 봇물 터지듯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여러 종류의 말씀 강해서와 함께 교회사 책들을 탐독하면서 나의 고민들을 거시적인 차원에서 조망할 수 있었다. 초대 교회사, 중세 교회사, 근현대 교회사들을 차례로 훑어가던 중 나는 매 시대마다 우리의 신앙 선배들이 고민했던 주제들, 그리고 좌충우돌의 실수들이 일정한 패턴을 갖고 반복되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감리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가 모라비안 성도들을 만난 후 품게 된 고민이 곧 나의 고민인 것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지극히 오른쪽으로만 치우쳐 있던 선교 단체에서 나와 온누리교회로 옮겼고 점차 신앙에 있어서 좌우의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책을 집필하면서 ‘교회사’를 주제로 출간된 기존의 수많은 책들과 한 가지 점에서 분명한 차별화를 시도하려고 한다. 그것은 교회사와 세계사를 한데 묶어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스토리텔링 기법을 사용하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와 있는 교회사 책들은 대부분 외국의 저명한 교회사 교수들의 저술을 번역한 것이다. 이런 책들은 학술 서적으로서 신학교에서 교재로 사용하기에 적합할지 모르지만 일반 평신도들의 눈높이에는 전혀 맞지 않다.
게다가 시중에 출판된 거의 모든 교회사 책들은 세계사를 기본적으로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씌어져 있다. 교회사를 다루기 전에 세계사에 대한 약간의 배경 지식들이 설명되어 있긴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전문적인 교회사의 흐름을 따라잡는 게 여간 어렵지 않다. 이를 위해서는 해당 시기와 관련된 세계사 책을 동시에 펼쳐놓고 교회사 책을 읽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이런 상황들이 그나마 교회사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입문해보려고 하는 평신도들을 지레 주눅 들게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녹다운시키는 것 같다.
교회사와 세계사를 한데 묶은 퓨전식 스토리텔링! 이것이 이 책의 집필을 시작하는 저자의 의도다. 엄밀히 말해서 '교회사'라고 불리는 별도의 학문은 존재하지 않는다. 때때로 세계사와 교회사는 분리가 어려울 만큼 실타래처럼 얽혀 있고, 특히 중세 역사의 경우는 교회사를 빼고 세계사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런 점에서 교회사에 대한 바른 접근은 세계사와 함께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교회사도 크게는 ‘역사’의 범주에 속하는 만큼 이 책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역사에 대한 기존의 오해와 부담감을 떨쳐버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역사는 결코 복잡한 연도와 함께 무조건 달달 외우는 암기 과목이 아니다. 역사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어렸을 때 할머니의 무릎을 베개 삼아 듣던 구수한 ‘옛날이야기’의 범주에 속한다. 그러므로 역사는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암기 과목’이 아니라 말랑말랑하고 쫄깃쫄깃한 ‘스토리텔링’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소통과 공감’이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매김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시대를 살면서 세상을 향해 ‘예수 천당! 불신 지옥!’만 외쳐댔다가는 오히려 ‘소통 불능’, ‘꼴통’이란 소리만 듣기 쉽다. 더 이상 우리들만의 잔치, 그리고 우리들만의 리그로는 불신 세상을 향해 의미 있는 임팩트를 가하기 어렵다.
이 시대는 성경만 아는, 그래서 자칫 편협하고 융통성 없어 보이는 기독교인을 원하지 않는다. ‘성경’과 ‘역사’를 모두 꿰뚫고 있는, 그래서 세상과도 자유롭게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그런 기독교인을 찾고 있다.
잠시 후 우리는 예루살렘 성전 파괴(주후 70년)부터 2차 세계대전(1945년)까지 2,000년에 가까운 교회사 탐험의 대장정을 떠나려고 한다. 아무쪼록 스펙터클한 교회사 탐험을 마칠 때쯤에는 저마다 성경적 진리 위에 역사성과 세계관을 겸비한 ‘통 큰’ 크리스천으로 거듭나는 유쾌한 체험이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이 시기를 나누어 총 3부의 대하드라마로 펼쳐질 것이다.
1부: 예루살렘 성전 파괴부터 로마 제국 멸망까지(주후 70-476년까지)
2부: 로마 제국 멸망부터 십자군 원정까지(476-1291년까지)
3부: 르네상스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1291-1945년)
자, 그러면 저자와 함께 2,000년에 걸친 교회사 탐험의 대장정을 출발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