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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말하는 '돕는 베필'의 의미는 무엇일까?

결혼 후 '돕는 배필'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남편은 주인공이고 아내는 돕는 조연과 같은 느낌을 받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라고 하지만 남편도 아내는 '돕는 배필'이니 자신을 도와야 한다고 은연 중 행동할 때마다 불평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결혼에서 부부는 누구하나가 더 열등하지도 더 고차원적이지 않습니다. 서로의 연약함을 받아줄 때 주님의 섭리가 완성되는 것 같습니다.  

최초 여자의 정체성은 ‘돕는 배필’이었다.
흔히 이 말을 들으면 남성우위를 말하는 것이라 오해한다. 돕는 위치에 있으면 더 하등한 존재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의 성경적 의미를 살펴보면 오해가 풀린다.
히브리어로는 “에제르 네게드”인데, 성경에 이 말이 나올 때는 주로 “도우시는 하나님”을 뜻한다. 신약에서는 “보혜사” 성령님으로 번역되었고, 구약에서는 17번이나 하나님을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출 18:4 ; 신 33:7,26 ; 시 20:2 등).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돕는 배필은 열등한 조력자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 더 고차원적이다.십보라가 그 의미를 잘 보여주었다. 그녀는 결코 모세보다 열등하지 않았다. 오히려 위기의 순간에 지혜를 발휘하여 남편을 살렸다. 마치 성령께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도를 위해 역사하시듯(롬 8:26), 그녀도 비밀스럽지만 가장 적합하게 남편을 도와 사역했다. 하나님과 남자 사이에 샬롬을 가져오는 위대한 사역을 행했다.

지혜는 돕는 배필의 정체성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지혜의 두 가지 모습을 알 수 있다.

먼저, 지혜란 ‘양극단을 아우르는 능력’이다. 비둘기와 뱀의 공존이며(마 10:16), 약한 곳에서 태어나는 강함이며(고후 12:9), 죽어야 살아나는 힘이다(고전 15:31).십보라는 거룩한 이와 죄인 사이를 연결해냈다. 극과 극을 이었다. 창조주와 사형수 사이를 오갔다.

또한 지혜란 ‘지식을 실제로 적용해서 행하는 것’이다. 정보가 아무리 많아도 그것을 유용하게 사용해야 지혜가 된다. 지혜의 탄생 하나님은 지혜의 원천이셨다. 그분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셨다(창 1:27). 성부, 성자, 성령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처럼 인간에게도 남편과 아내라는 역할을 주셨다. 하나님이 삼위일체로 계시듯, 남성과 여성은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공동자아”가 되었다(칼 바르트, 《하나님의 인간성》, 새물결플러스, 72-107쪽).

최초의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부부라는 공동체성을 향해 달려갔다(창 2:18-24). 그 안에서 서로 경쟁하지 않았다. 남성의 성 정체성을 기준으로 여성이 조수가 되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둘은 각각이지만 연결된 존재로 태어나 서로를 향한 결핍을 느끼며 살았다(창 2:18).
그러다 결혼을 통해 남성은 남편이, 여성은 아내가 되었다. 부부란 함께여야 얻을 수 있는 정체성이었다. 그들은 부부관계 안에서 공동자아를 완성해갔다.

결혼은 “인간이 무죄하던 시대에서부터 존속된 제도”이다(마이크 메이슨, 《결혼의 신비》, 진흥, 104쪽). 부부 정체성은 타락 전에만 존재하다 끝나지 않았다. 인류의 범죄 후에도 결혼은 지속되었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특히 아내들은 “여자의 후손”(창 3:15)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었다(창 4:1). 여자는 이 말씀을 붙들고 죄책을 뒤집을 메시아의 탄생을 기다렸다.

가정을 돌보고 지키면서 그 약속을 이룰 후손을 기대했다.
이 기대는 고통을 통과했고(창 3:16), 고난은 인내를 거쳐 믿음을 키웠다. 메시아의 도래가 죄인의 가정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고, 임신과 해산의 고통을 통해 아내는 의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어둠 가운데 빛이 잉태되며, 죽음의 땅에 생명의 봄이 움트며, 고통이 변해 기쁨이 될 것이다. 아내는 이런 지혜를 배워나갔다.
<숨기지 마라>송준기 p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