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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토크 #08] 교회 다닌다면서 삶은 엉망인 사람들은 어떻게 봐줘야 하나?

“기독교가 절대 진리라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왜 저 모양이냐?”

전도할 때 자주 듣는 말이다. 물론 눈에 보이는 조직을 갖춘 유형 교회에 속하면서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유형 교회만 볼 때는 여러모로 부족하고 흠도 많다. 그러나 그 안에 참된 신자들이 있다. 알곡과 가라지가 한데 섞여 있는 유형 교회만 보고 마냥 교회를 멀리하려고 한다면 나만 손해를 본다.

무엇보다 예수님 믿고 구원받는다고 해서 다 그 순간부터 거룩해지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인 역시 타락한 상태에서 건짐 받은 자, 말하자면 ‘용서받은 죄인’이다.

자신이 중병에 든 것을 알고 건강을 회복하려고 의원을 찾아온 연약한 사람들이다. 거기에는 치유가 꽤 진척된 사람도 있지만 한창 수술중인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한결같이 자신의 ‘죽을병’, 곧 하나님을 떠난 죄를 인정하고 삶의 근본 방향을 그분께로 분명히 고쳐 잡은 사람들이다. 기독교는 선한 사람이 아니라 ‘죄인’이 구원받는다고 말한다.

물론 신자가 되고 나서도 죄를 짓게 될 때는 거듭 회개해야 한다. 구원받고 거듭날 때 단 한 번 하는 회개와는 다른 일상 속의 회개이다. 죄의 자백과 회개를 게을리하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없다.

하나님과 친하지 않으면 결코 새로운 삶을 살 수 없다. 저마다 행복을 구하는 시대에 거룩해지려면 고통이 따른다. 행복을 구한다고 거룩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거룩해지길 구하면 반드시 참 행복을 누리게 된다. 이기심을 깨뜨리는 고통을 통과해야 거룩해질 수 있다. 죄인이 거룩 없이 얻는 행복은 가짜일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구원받고서도 자아의 연약함으로 죄를 지었을 때 즉각 회개하고 계속해서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받는 기독교인들이 눈에 띄었을 수 있다. 그러나 대사회적으로도 기독교인 전체가 비난을 받는 면에 대해서도 여전히 변명할 여지는 있다.

어느 단체든 대사회적인 이미지는 늘 모난 면이 먼저 부각된다. 그것을 이슈로 삼는 것이 사회 곳곳의 치부에 민감한 저널리즘의 생리이다. 목회자의 성적 타락이나 교회 분열 같은 사건은 매스컴을 빨리 탄다. 그 기사 하나 때문에 다른 선의의 목회자나 교회들이 피해를 본다. 어떤 한국인이 뭔가 잘못을 했다고 해서 모든 한국인이 다 비난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듯, 일부 기독교인들의 잘못이 교회 전체의 허물로 섣불리 매도될 수는 없다.

선행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 기독교인은 구원 이후 조금씩 거룩해져 가는 과정에 있다. 물론 교회 안에는 거듭나지 못한 명목상의 교인들, 진짜 위선자들도 있다. 하나님도 그들을 아시고 훗날 심판하신다.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라고 경고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도 행하고 주목받는 큰 업적도 이루지만 바로 그 예수님께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는 최종 선고를 받는다(마 7:22,23).

심판은 하나님의 몫이다. 사람은 함부로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려 해선 안 된다.

교회 안에는 연약한 자와 위선자들도 있지만 신실하고 귀한 목회자와 성도들도 있다. 예수님은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마 6:3,4)라고 말씀하셨다. 교회의 선행은 외부에 그리 잘 알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의 그 어느 조직체가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구제와 선행이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의 손발을 통해 행해지고 있다.

성경적인 기독교 윤리와 제자도로 가정과 직장을 지키고 사회 공동체의 발전에 이모저모로 공헌하는 건실한 ‘시민 그리스도인’들도 있다. 이들 역시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데, 이들이야말로 세상이 아무리 타락해도 아주 썩지는 않게 하는 소금 같은 존재들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마 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