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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현대 예배에서 발견되는 5가지 흐름 _David Taylor

David Taylor는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과테말라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텍사스 주 어스틴의 호프 채플(Austine Hope Chapel)에서 12년간 예술 목사(Arts Pastor)로 섬겼다. “For the Beauty of the Church: Casting a Vision for the Arts(Baker)”라는 책을 편집했으며 크리스채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를 비롯해 여러 곳에 글을 나누고 있다. 현재 듀크대학(Duke Divinity School)에서 예술 신학 박사 과정 중에 있다.
 
번역: 김재우 선교사는 A.C.T. 소속 예배예술선교사이며 로잔아트분과 Catalyst로 활동하고 있다.


얼마 전에 내가 아는 사람에게서 예배의 흐름 가운데 최근 관찰한 것들을 나눠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내가 예배의 방대한 내용과 흐름을 전능한 관점을 갖고 관찰하고 분석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지난 몇 년간 비교적 눈에 띄는 몇 가지 변화와 흐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여기 첫 번째 파트를 나누고자 한다. 첫 번째 파트는 거의 대부분 예배에서의 음악적 예술분야에 관한 것인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흐름일 것이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60-70년대부터 시작된 조금 오래된 흐름으로 여겨질 것이다.
 
1. 고대의 예전적 자료에 대한 눈에 띄는 관심의 증가
교단의 벽을 뛰어넘어 많은 교회들이 역사적 예배의 실천에 대한 엄청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들이 50년 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pre-Vatican II)의 예배로 돌아가든지 또는 대각성과 부흥의 시기로 돌아가든지, 아니면 종교개혁 당시로 돌아가든지 혹은 수천 년 전으로 돌아가든지, 현대의 예배인도자들은 ‘오래된’ 양식에 관심이 있다.
 
(이 흐름에 관련된 질문 한가지)

예배인도자가 어떤 근거로 누구에게 어느 시대의 예전을 소개받을 것이며, 예배인도자가 특정한 예전을 예배에 도입하기로 (또는 도입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2. 전문 음반기획사가 제작한 음반보다 지역적으로 자체 제작한 음반에 대한 관심의 증가
여기엔 오순절주의나 개혁주의 모두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오순절주의 전체가 지향하던 성향에서 이제는 지역적 상황에서 일하시는 성령을 인식하고 인정하고 있으며, 개혁주의는 그들 고유의 문화적 성향에서 나와 이제는 지역마다의 민속(fork)음악을 인정하며 ‘사람들이 부를 수 있는 음악’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이머징 회중, 초교파, 다민족교회, 대학과 신학교 예배모임들도 이런 현상을 보이고 있다. 캘빈예배연구소처럼 교단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 곳에서도 이러한 흐름을 따라 새로운 찬송가집들을 제작하고 있다.
 
(이 흐름에 관련된 질문 한가지)

작은 지역의 회중은 어떻게 고립되지 않고 큰 단위의 지방, 국가, 그리고 국제환경과 연결되어 있을 수 있을까?
 
3. 신학적 지식이 담겨있는 노래에 대한 관심의 증가
창조와 생태세계의 다스림에 대한 창조주 하나님, 모든 민족과 방언을 불러 모으시는 열방의 하나님, 또는 성찬과 세례로 성도들을 참여하게 하는 성례의 하나님 등, 이렇게 이 시대의 예배인도자들은 신학적으로 진지한 음악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이 흐름에 관련된 질문 두 가지)

만약 하나님이 삼위이시라면 그것이 예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예배의 실천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그리스도가 100% 하나님이시고 100% 인간이라는 사실은 우리 예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
 
4. 타문화 예배자료에 대한 관심의 증가
위클리프성경번역선교회의 월드아트분과, 국제종족예배학회, 로잔아트분과, 캘빈예배연구소, 로버트웨버 worship institute 등 전 세계 많은 관련 단체와 전문가들이 다민족, 타문화 예배와 관련된 자료들을 개발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이 흐름에 관련된 질문 한가지)

만약 회중의 규모가 크고 동질문화집단으로 구성되어 있을 경우, 예배에서 이런 자료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5. 선교적 차원의 예배에 대한 관심의 증가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예배가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해하기 쉽고 접근하기 쉬울지 고민하고 있다. 예배를 전도의 관점으로 보느냐 혹은 제자도의 관점으로 보느냐는 오랫동안 진행되고 있는 이슈인데 이제 사람들은 선교라는 큰 관점의 틀로 이 이슈를 논하고 있다.
 
(이 흐름에 관련된 질문 한가지)
기독교예배가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면에서 친근해야 하며 어떤 부분에서 여전히 낯설 수밖에 없는가? 어떻게 ‘밖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예배를 상황화하면서도, 원래 예배가 줄 수밖에 없는 신비감과 초청을 요하는 복음의 불편함이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우리 예배가 순례자와 구도자(Seeker)들을 포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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