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걷어내고도 예배를 드릴 수 있어야…
누가 불을 지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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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송
한국의 예배운동은 한국 개신교의 여러 맥락과 맞닿아있다. 지난 30년 가까운 한국 찬양운동의 여러 면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그와 대화를 나눴다. ㅡ 인터뷰 Worship Insight l 사진 청어람아카데미
W.I : 우선 워십인사이트의 인터뷰에 응해주신 점 깊이 감사드린다. 인터뷰 요청을 낯설고 의아하게 여기셨을 것 같다.
양 : 하하, 대학 시절에 “경배와찬양” 운동 초창기부터 참여했고, '기독노래운동 뜨인돌' 멤버였다. 가끔 찬양곡 번역도 했었다. '예배'란 주제는 내 젊은 날의 매우 중요한 신앙적 화두였다. 전혀 낯설지 않다. 기쁘게 인터뷰에 응했다.
W.I : 예배와 찬양 관련한 대화의 장에 참여하는 일은 기억하기로 작년 ‘예배 찬양 25년, 그 미완의 과제’이다. 거기서 나눈 주요 내용은 무엇이었나?
양 : 사실 1995년부터 3년간 “경배와찬양”에서 계간지 [전하세 예수]의 편집장 일을 했다. 예배운동 전반, 그리고 소위 '찬양사역' 등등에 글을 쓰고, 토론과 연구도 나름 해 왔기에 가끔씩 교수님들이나 사역자들과 교류를 해왔다.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이유정 목사님과의 인연으로 발제를 하나 하게 되었다. 다른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주로 가수나 작곡가 등 '찬양사역자'였기에 '찬양사역의 현실적 어려움'이나 경험적 사례 등을 주로 이야기하는데, 나는 이런 논의가 좀 더 광범위한 '현대적 예배운동'의 맥락에서 조명되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예배'가 곧 '음악'은 아니지 않은가? 어떤 신학적 전환이 있었는지, 국제적으로 어떤 움직임과 생각들이 제출되고 있는지, 신앙운동 전반의 흐름과는 어떻게 연결되는지 등을 넓게 보자고 제안했다. 특히, 나는 미국의 음악산업 흐름에 지나치게 종속되지 않기 위해서는, 영국이나 유럽의 움직임들, 예를 들면, 프랑스 '떼제 공동체'의 영성운동, 영국 복음주의권의 초대형 수양회운동들('스프링 하베스트' 등)이나 대안적 기독교 문화운동('아이오나 공동체'나 '그린벨트 아트페스티벌' 등) 등을 참고하자고 했다.
W.I : 그 컨퍼런스에 참여한 후 느낌이랄까 소감이 궁금하다. 거기서 나온 이야기들이 맥을 잘 잡고 있다고 보았는가?
양 : 컨퍼런스 자체로 보면, 일단 주요한 사역자들이 총망라된 느낌이 좋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집대성할 수 있었다는 점은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현안을 헤쳐나가기에 필요한 현실적 역량이나 상상력의 크기가 그리 커 보이지는 않았다. 문제 인식의 수위를 확인한 정도가 성과였다 생각된다. 많이 힘든 것은 사실이겠지만, 피로감이 적지 않아 보였고, 이를 넘어설 활력이 어디서 공급될지 궁금했다. 나는 그들이 자신들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대안을 모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눈과 귀를 파격적으로 넓히는 계기가 필요해 보였다.
W.I : ‘다시 프로테스탄트’의 맥락에서 한국 “경배와찬양”, 예배가 포스트 2007시대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한다고 보는가?
양 : 나는 2012년 후반에 내놓은 [다시 프로테스탄트]에서 한국교회의 문제를 어떻게 파악해야 대안모색이 가능할까 고민을 했다. 세 가지를 핵심 문제로 꼽았는데, '성직주의', '성장주의', '승리주의'였다. 이런 것들은 신학적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교회 내의 문화나 관행 속에 뿌리 깊게 박혀있다는 점에서 더 고질적이다. 우리가 하는 예배운동이나 찬양문화는 이런 문화나 관행을 거스르는가, 강화시키는가? 한국교회의 오늘날 현실이 이렇게 되는 데에는 '예배의 오용'이 큰 몫을 차지한다. 예배운동가는 스스로 연약하다 변명하지 말고, 이런 현실 앞에 이를 악물어야 한다. 경박함, 눈먼 열정, 오락성 등이 한국교회에서 유통되고 소비되는 데에 책임 없다 할 수 없다. 나는 책에서 "한국교회에는 '교회성장론'외에는 교회론이 없다"고 했는데, 같은 맥락에서 "한국교회에는 '뜨거운 찬양'외에는 예배론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쉽게 말해, '성장'을 빼고도 교회를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음악'을 걷어내고도 예배를 드릴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점까지 고민이 나가 있어야 한다.
W.I : 위 질문과 비슷한 맥락이다. 교회 성장을 떠나 진정한 공동체 운동이나 다양한 실험적 형태의 모임이 시작되고 있는데, 포스트-복음주의 운동에서 “경배와찬양”이 차지하는 역할과 양상은 무엇일 것이라 전망하는가? 또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양 : 나는 책에서 교회성장론을 재고하게 만드는 사건으로 '가나안 성도'(교회에 '안나가'는 그리스도인을 일컫는 신조어) 현상을 꼽았다. 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 중에는, 예배 분위기에 대한 비판적 인식도 상당히 있다고 본다. 그들의 목소리를 잘 귀 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어떤 하나의 스타일을 전형적으로 따라가기보다, 저마다의 개성이 담긴 음악은 존중받는다. 가사 미학도 천편일률적인 것에서 성경적 근거와 삶에 대한 통찰이 잘 어우러진 것들이 주목받는다. 나는 포스트-복음주의 시대에도 여전히 '회중찬양'의 역할이 있다고 보는 입장인데, 다만 이것이 수행되는 방식은 음악적 측면에서나 예배적 차원에서 업그레이드가 되어야 한다. '예전(liturgy)'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한다. 회중을 한 덩어리로 보고 획일적으로 무대에 선 사람이 이끄는 데로 따라와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면, 아무리 많은 수가 모였어도 각자의 고백과 찬양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드려질 수가 있다. 더이상 개인을 집단의 일부로 간주하지 않고, 개인의 독특성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형성되는 공동체 경험을 허용하고, 격려하는 예배의 형태가 가능할 것이다. 그럴 때에라야 비로소 새롭게 열리는 영적 공간이 있다.
W.I : 청어람에서 WM(수요모임)을 시작했다. 어떤 모임이며 그 시작의 계기는 무엇인지 설명해달라. 다니엘서를 시작으로 한 이유가 있는가?
양 : 앞서 언급한 '가나안 성도'를 위한 모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2013년 1월부터 시작했다. 형식적 실험을 중심으로 삼기에는 힘이 좀 부쳤다. 그래서 주력한 것이 성경강해였다. 한 시간 설교하고, 30분 토론했다. 시작할 당시에는 사회적으로 소위 '멘붕'이란 단어가 많이 나왔다. 일차적으로는 지난 대선 결과에 실망감을 크게 느낀 사람들에게서 비롯된 용어였으나, 한국사회 전반적으로 자살, 실업, 양극화 등으로 일상적인 '멘붕'을 경험하는 상황이라 공감폭이 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성경에서 멘붕 시대로 꼽을 만한 시기가 '포로기'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공개적으로 완전히 다 망한 사건이다. 지구 상에서 이스라엘과 유대가 사라졌고, 바벨론의 지배가 고대 근동지역에 확립되었다. 이 시기를 관통하며 살아간 인물이 '다니엘'이다. 그 책을 매주 한 장씩 강해하면서 발견한 사실은, 우리가 다니엘서를 정말 모르고 있다는 것, 아니 매우 편의적으로 왜곡해서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니엘서의 메시지가 얼마나 우리 시대를 위해 강력한 위로와 도전이 되는지를 새삼 발견했다. 우리 모임은 쉽게 은혜받자는 모임이 아니었다. 그런데, 말씀이 좌절과 허무의 밑바닥까지 가닿는 시대를 어떻게 뚫고 나오게 하는지를 볼 수 있었다. 함께한 사람들에게는 정말 의미가 큰 대장정이었다.
W.I : 아직 한국교회 안에서는 예배인도자나 찬양팀의 세계관 수준이나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에 대한 논의조차 잘 나오지 않고 있다.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양 : 일단 예배인도자나 찬양팀에게 어떤 역할을 부여해야 하는지 안팎으로 동의된 것이 없다. 그래서, 목회자나 성도들은 이들에게 그냥 예배나 집회에서 '딴따라' 노릇을 하라는 것 이상 기대치가 없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건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본다.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이 80년대 중반부터인데 벌써 20년도 훨씬 넘었다. 잘 안 바뀐다. 대안은 예배인도자나 찬양팀 자체가 스마트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신앙의 기본 훈련뿐 아니라, 신학적 자원을 적극 흡수하고, 창의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나는 한국교회의 대안운동은 개인과 공동체의 차원에서 '로고스(이성), 파토스(감성), 에토스(윤리)'를 구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배운동이나 찬양을 단지 '파토스'를 자극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진정한 파토스의 분출은 언제나 로고스와 에토스와 강력히 결합했다. 그런 것을 '부흥'이라 해야지, 겨우 사람들 모아서 '흥분'시키는 것을 그리 불러서는 안된다.
W.I : 예배에 대한 이 같은 우리의 부족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신학자그룹, 목회자그룹, 예배인도자, 회중이 각각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양 : 에둘러가지 말고, 단도직입적 질문을 많이 제기하면 좋겠다. 변화가 너무 더디다. 거의 20년 넘게 정체된 것 같다. 이건 신중한 것이 아니고, 헤매는 거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 파묻고, 원점에서 던질만한 질문을 붙잡고 씨름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 새로운 것을 과감하게 시도하라. 언급한 여러 그룹들의 노력이 다 필요하지만, 누가 돌파구를 만들 것이냐가 결국 핵심이다. 나는 자칭 '예배인도자'라 하는 이들이 결국 그 일을 촉발해야 마땅하지 않나 싶다. 인적, 물적, 지적 자원이 없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 불 지를 사람이 없어 보인다. 뭐라도 들고 나와서 불장난하는 사람들이 좀 많아지기를 바랄 따름이다. 그런 자리라면 나도 좀 끼어볼 의사가 있다.
W.I : 그런 자리에 꼭 끼실 것으로 공언하신 셈이다. 그 날을 기대하겠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양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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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에서 전자공학을, 영국 Trinity College, Bristol(신학 BA), London School of Theology(신학 MA)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월간 [복음과상황]에서 편집장 및 편집위원장을 지냈고, 한동대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7년간 강의했다. 2005년부터 ‘청어람아카데미' 대표 기획자로 일하면서 인문학, 정치-사회, 문화-예술 등의 분야에서 500회가 넘는 대중강좌를 기획, 운영해왔다. 2011년에는 CBS TV와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을 공동으로 기획하였다. 저서로 [다시 프로테스탄드: 한국교회,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복있는사람, 2012), [묻고 답하다: 강영안, 양희송 2박3일의 대화] (홍성사, 2012)가 있다.
<워십인사이트 2013 .08 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