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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날 교회에서 슬픔의 노래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찬송가집을 기억하는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중에 찬송할 때 우리가 쓰곤 했던 그 사랑스러운 책 말이다. 찬송가집을 알고 있다면, 그 안에 얼마나 다양한 찬송가가 담겨있었는지까지도 떠올릴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찬송가집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경배와 찬양에서부터 기독교인들의 교회력은 물론 그 이후까지의 삶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또한, 찬송가집은 인간사와 닮은 데가 있어서 그 안에는 슬픔의 노래들 또한 담겨있다. 오늘 날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 부르는 새로운 찬송가들을 떠올려보자. 그 중에 ‘애가(the Laments)’는 얼마나 되는가?

한 곡도 없는 것 같다.
그런데 히브리 성서 가운데 하나인 시편에 실린 150편의 노래 중 3분의 1 이상은 애가다. 이는 참 놀라운 일이다. 우리 서방 세계에서 찬송가라고 한다면, 일명 ‛기독교의 승리를 선포하는 노래’라 부르는 바로 그런 노래가 대부분이니. ‘주 예수 믿는 자여(Lead on O King Eternal)’라는 찬송가만 해도 이런 정서를 놀라우리만치 잘 담아내고 있다. 이 노래는 “그리스도는 왕이요, 복음이 펼쳐지고, 평화가 도래하니” 그야말로 “환희의 세상(Joy to the World)이로다”라고 선포한다. 또 찬양의 뜻이 담긴 노래들이 많지 않은가? “내 구주 예수님(Shout to the Lord)”과 같이 믿음과 하나님께 맡기는 삶이란 주제를 절묘하게 전달하는 노래가 많다. 이런 노래들은 모두 환희와 찬양을 표현하고 있다. 오로지 선의로만 가득 차 있고, “하나님 크고 위대하신 주(Our God Is an Awesome God)”라 외치게 함으로써 예배 때 회중을 하나로 엮어주는 강력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잃어버린 보물
그런데 비탄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고통과 슬픔, 상실, 황폐를 표현해주는 음악적 수단은 어찌 되었는가?
광장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 중에는 항상 슬픔의 노래가 있었다. 베르디의 “라 보엠(La Boheme)”에서 로돌프가 미미를 애도하며 자아내는 비통함에서부터, “무드 인디고(Mood Indigo)”에 흐르는 듀크 엘링턴의 구슬픈 화음, 애인도 떠나고 개도 잃고 트럭까지 고장 난 컨트리 가수의 노래, 뉴올리언스의 세련된 블루스 리프까지 슬픔의 노래는 항상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음악 세계의 일부로 자리잡아왔다. 헌데 하나님의 사람들(God's people) 사이에서만큼은 슬픔의 노래가 완전히 자취를 감춘 듯하다. 노예 시절의 삶의 고통을 하나님을 향한 헌신으로 승화시킨 전통적인 흑인 영가(Negro Spiritual)만이 예외일 뿐이다. “그 누가 나의 괴롬 알까/ 그렇지만 예수님만은 알고 계시다네.” 이 가사에 담긴 놀라울 정도의 슬픔과 강한 믿음을 보라!

현실에 가깝게
시편에 애가까지 실린 것은 예배 분위기를 가라앉히기 위해서가 아니다. 고대 이스라엘 때, 신앙인들이 부르던 노래에는 자연스럽게 비가도 일부를 차지했다. 애가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다가오는 슬픔과 상실을 표현하는 노래이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관대하심과 자비를 믿고 있는 신앙인이라면, 더욱더 여느 사람보다 슬픔에 가득 차있게 마련이다. 항상 더 나은 것을 기대하기에, 상실은 더욱 사무치니.

지금의 우리도 똑같다!
성서에 실린 비가는 풍부한 유형을 취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고, 정말 깊이 상처를 입은, 진짜 사람들, 신앙심 깊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삶으로부터 탄생했다. 하나님께 바치는 모든 노래가 다 위풍당당할 필요는 없다. 주께 바치는 모든 찬송가가 확신에 가득 찬 찬양일 필요도 없다. 가끔은 믿음이라는 견고한 기반 위에 자리한 슬픔의 노래가 필요하다. 바로 저 슬픔의 시편(the psalms of lament)과도 같다. 고통을 나타낸 음악은 마치 구약성서 같다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고통과 상실, 슬픔은 그 옛날의 사람들만이 느끼던 감정이 아니다. 우리 또한 마음이 아플 때가 있다. 우리 또한 상실로 인해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감정의 범위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재판 와중의 기쁨을 힘있는 글쓰기로 표현했으며 동시에 고린도후서에서는 슬픔과 파괴, 고통을 애통한 어조로 써냈다. 예수님은 사람을 비웃거나 다치게 하지 말라 말씀하시며, 또한 눈물 흘리셨다. 성서에 담긴 고통과 슬픔의 노래는 더 오랫동안 슬퍼하라는 뜻으로 쓰인 게 아니다. 이들은 술독에 빠져 자기연민을 일삼고, 감상에 차 눈물을 흘리며 넋두리를 하거나 고함을 치는 사람들의 노래가 아니다. 성서 속의 애가는 슬픔을 표현하고 야훼에 대한 믿음을 재건하고자 하는 효과적인 방편으로서 탄생했다.
그런데, 오늘 날 교회에서 슬픔의 노래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로널드 B. 앨런 신학 박사(Dr. Ronald B. Allen, Th. D.)는 달라스 신학교(Dallas Theological Seminary)의 성서강해 교수로서 교실에서는 학문으로써, 예배 시에는 설교로써, 컨퍼런스에서는 강의로써 성서를 가르치고 연설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의 수많은 저서중 하나로는 ‘예배: 잃어버렸던 보물 다시 찾기(Worship: Rediscovering the Missing Jewel)’가 있으며 신흠정역 성서(The New King James Version)와 구약 성서의 선임 편집자였으며 넬슨 해석 성경(The Nelson Study Bible, 일명 The NKJV 해석 성경)과 넬슨 성경 도해 주석 신판(Nelson's New Illustrated Bible Commentary)의 편집자였다. 앨런 박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히브리서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위엄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계속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