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초 배우자가 한 이야기 중 '부부지만 공유할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는 것 같아.'라는 말에 부부는 한 몸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서운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치열한 신혼의 시기를 지나고 나니 건강한 부부는 무조건 한 몸이라는 생각에 똑같아야 한다가 아니라, 주님이 사랑하신 배우자의 그 모습 그대로의 인정하고 연약한 부분은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로 나아가야 한다는 걸 배우게 되었던 것같습니다.
언젠가 한 신혼부부가 심하게 싸움을 하고 병원에 왔다.
그들은 “도저히 이렇게는 살 수 없다”라고 하면서 이혼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그래도 이들은 귀여운 편에 속한다. 내 앞에서 서로 자기가 옳음을 증명하려고 설전을 벌이는 부부도 있었다.누가 등 떠밀어 한 결혼도 아닌데 왜 그럴까?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한마디 했다.
“그만하세요. 그 사람은 부모도 못 바꿔요.”
그래도 들을 귀가 있는 부부였기에 내 설명을 잠잠히 듣기 시작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구별하세요. 내 품성도 바꾸기 힘들잖아요. 남편(아내)의 품성 역시 바뀌기가 쉽지 않습니다.”
부모도 못 바꾸는 둘의 품성은 결혼이라는 긴 터널을 통해 다듬어져 간다. 그래도 부부 상담을 받겠다는 커플에게는 반드시 소망이 있다. 사실 결혼을 하면서부터 행복 지수가 떨어진다.
결혼식장이 행복의 최고치라고 보면 된다. 그다음부터는 점점 떨어진다.
결혼하면 배우자와 한 몸이 됐기 때문에 불순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상대에게 불순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불순물에 집중하여 그걸 바꾸려고 한다. 그리고 요구한다.
“이 불순물을 빨리 없애!”
내 불순물은 보지 않고 상대의 것은 바꾸려고 한다. 그러나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이 분명히 있다. 나와 똑같은 생각을 상대방이 해주면 아마 이 세상에 관계의 갈등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로봇이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고유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만드신 이유가 다 있다. 삶의 목적과 고유의 특성들이 저마다 다르다. 상대의 단점을 오히려 긍정적인 에너지로 생각하면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숙한 기독교인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