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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민 감독의 봉이 김선달 - 우리는 선한 사기꾼을 원하는 시대에 사는가?

사기꾼 전성시대 한 때 영상문화를 장악했던 조폭들이 떠난 자리를 지금은 사기꾼들이 대신 차지하고 있다. 영화전문 케이블TV OCN 은 지난 6월부터 세금 징수 공무원이 사기꾼과 편을 먹고 상습적으로 탈세를 저지른 악질의 고액탈세자의 세금을 거둬들이는 내용의 16부작 드라마 <38사기동대>를 편성하 여 인기를 끌었다. 돈이 있으면서도 편법을 자행하여 국민 의 의무인 세금을 내지 않는 고액의 탈세자라는 새로운 종류의 악당(?)을 만든 것도 흥미로운 일이었지만, 이 악당으로부터 세금을 받아내기 위해 세무담당 공무원이 사기꾼 과 짝을 이루어 교묘한 사기수법을 보여주는 것 또한 한국 드라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비록 선한 목적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공무원과 사기꾼이 협작하는 사기수법은 그 자체가 또 다른 범죄행위가 될 수 있는 까닭 이다. 그렇지만 시청자들의 마음은 윤리적 접근을 허용하기보다는 선한(?) 사기에 말려들어 결국 세금을 물게 되는 악당의 몰락에 박수를 보낼 뿐이었다.

<나우 유 씨 미2>(Now You See Me 2)는 전편인 <나우 유 씨 미 : 마술사기단>의 속편으로 눈을 속이는 마술을 통 해, 고객에게 제대로 보험금을 지불하지 않은 보험회사 회 장의 음모를 분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영화 역시 마술사기단인 호스맨과 이들을 뒤쫓는 FBI 수사관 딜런이 결국 같은 편이라는 점에서 공직자와 사기단의 깊은 유착 관계를 보여준다. 내용상으로는 ‘선한 사기’일지 모르지만 관객이 영화를 통해 느끼는 재미는 선의 승리로부터 오기보다는 관객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주인공의 꼼꼼한 사기 전술을 지켜보는 일로부터 발생한다. 이것은 일종의 케이퍼 무비(Caper movie)의 특성을 반영하는 일이다.

범죄자의 범죄 행위를 상세히 보여주는 영화를 케이퍼 무비라고 부르지만, 이것 은 엄격히 말하면 범죄영화의 하위 장르에 해당한다. 박대민 감독의 <봉이 김선달>은 우리 고유의 구전설화로 전해 내려오는 ‘봉이 김선달’의 이야기를 블록버스터급으로 각색한 영화다. 이미 1957년 한흥렬 감독이 같은 제목으로 영화화 한 것을 비롯하여 1968년도에는 ‘천하 호걸 김 선달’이란 이름의 TV 드라마로 제작된 일이 있어서 한국영화사의 특별한 영화로 기록될 가능성은 적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이 영화를 둘러싼 한국사회의 현실에 바탕을 둔 이해 가능성이다.

신분제 사회에서 민중의 편에 섰던 봉이 김선달
‘선달’이란 조선시대에 무과에 급제했지만 벼슬에 나서지 못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사연은 알 수 없지만 김선달이란 이름 안에는 양반으로서의 자격을 갖췄지만 신분제사회에 동화되어 높은 신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력을 탐하는 것과 는 거리가 먼 삶을 산 인물이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우리 는 이 설화나 영화에는 모두 권력을 쫓지 않는 것에 머물지 않고 권력을 남용하고 민중을 수탈하는 양반을 풍자하고 이 를 일반 백성들과 즐기는 해학의 요소가 있음을 발견한다. 영화 <봉이 김선달>의 핵심은 청나라를 등에 업고 막강한 권력과 재물을 손에 쥐고 흔드는 성대련(조재현)과 봉이 김선달 (유승호)의 한판 대결에 있다.

김선달이 서울 양반에게 팔았다 는 대동강 물은 영화에서 금맥이 흐르는 대동강으로 변하고, 이를 성대련에게 팔기 위해 댐을 건설하는 등의 치밀한 사기 작전을 펼치는 장면 등 영화는 원작과는 다른 장면을 전개 시킨다. 즉 설화에서는 그럴싸하게 말하는 김선달의 언변에 속아 넘어가는 잘난 체하고 거들먹거리는 양반들의 에피소 드를 모았지만, 영화는 김선달의 계획적인 대동강 팔기 작전 에 집중한다. 영화 <봉이 김선달>이 원작의 기본 내용만을 차용한 채 파격 적으로 외형을 창작한 것은 상업성과 현대성 때문일 것이다. 김선달의 영화 속 이미지는 정통 사극에서 나올 법한 조선시 대의 풍류객 김선달과는 사뭇 다르다.

과거에 급제하고 세상 이치에도 통달했다면 어느 정도의 연륜이 쌓인 사람일 것이 라는 생각과 다르게 영화는 꽃미남 유승호를 등장시켰고, 심지어 여장으로 양반을 유혹하는 에피소드를 집어넣기까지 한다. 특히 이것이 성대련의 도발적인 행태를 좌시하지 않았던 왕이 김선달을 시켜 모종의 계략을 펼쳐 이뤄낸 작전이란 설정에 이르게 되면 이 영화의 감독이 치밀한 사고를 가진 현대의 관객들을 설득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사회적 가치는 한 번 생각해볼 만한 일이다. 청나라를 등에 업고 막강한 부와 권세를 누리는 성대련은 백성들의 현실과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평양 인근의 땅을 모두 청을 위한 담파고(담배) 밭으로 뒤엎으려 한다. 그의 눈에 백성은 개·돼지나 다름없다. 우리는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서 한국의 교육정책을 총괄하 는 고위 간부의 입에서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는 말과 함께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는 말이 그의 입을 통해서 세상에 흘러 나왔다.

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는 한국사회의 부와 권력을 거머쥔 사람들 얘기가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픽션이 아니라 사실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우리는 충격과 한탄을 금할 수 없는 것이다. 조선시대와 그 이전에 살았던 우리의 조상들 가운데 대부분 은 신분제사회에서 소외받고 가난의 고통을 숙명처럼 여기 며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봉이 김선달>은 권력과 부가 세습 되는 사회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고 오히려 수탈당하기 쉬운 백성들을 향한 위로의 콘텐츠다. 잘못된 사회에 서부와 권력자를 향해 사기 치는 일은 가진 것 없는 자들의 생존수단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점에서 <봉이 김선달>의 흥 행을 지켜보는 마음이 좋을 수 없는 것이다.

기독교는 목적과 수단 모두 옳아야 함을 주장한다. 일제시대 기독교 계몽 운동가였던 도산 안창호 선생은 사기의 근원적 행태인 거짓말에 대해서 두 가지 명언을 남겼다. 첫째는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 꿈속에서라도 성실을 잃었거든 뼈저리게 뉘우쳐라. 죽더라도 거짓이 있어서는 안 된 다’이고, 다른 하나는 ‘속이지 말자. 속지 말자’이다. 그러나 그보다 세상의 부와 권력을 쥔 사람들을 향해 거짓말을 하고 사기치는 일이 대중의 오락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서는 안될 것이다.

강진구
고신대학교 국제문화선교학부교수. 영화평론가. 서강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종교학을 전공했다.
저서《감성세대 여화읽기》이메일 moviejin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