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달에 다시 보기를 권하는 영화
디지털 문화의 장점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콘텐츠를 볼 수 있는 데 있다. 도서관 폐관 시간에 관계없이 전자책(e-Book)은 언제 어디서나 지식의 창고로 우리를 인도한다.
영화 또한 마찬가지다. 지나간 영화들을 쉽게 다운받아 볼 수 있는 스마트하게 발전한 디지털 기술은 상영관에서 영화가 종료된 이후에도 손쉽게 영화에 빠져들도록 늘 우리 곁에 있다. 이것은 디지털 콘텐츠 문화가 일으킨 혁명이다. 첫째는 영화의 저장과 보관 그리고 유통에 있어서 획기적인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그러할 뿐만 아니라 또 하나는 가치 있는 영화를 다시 보는 일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에 있어서도 그 의미가 매우 크다.
해외여행과 유학이 자유롭지 못하던 1980년대만 하더라도 미국과 유럽으로 영화를 공부하러 떠난 유학생들의 일차적인 목적은 영화를 마음껏 보는 데 있었다. 교과서에는 실리지만 한국의 극장이나 영상라이브러리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영화를 보기 위해 많은 영화학도들이 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오늘날 지식의 공유 현상은 영화학에도 나타나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우리가 보지 못할 영화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참으로 좋은 세상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좋은 영화를 선택하는 안목이 예전에 비해서 발전했다고는 볼 수 없다. 또한 극장에서 좋은 영화를 상영하는 횟수가 늘어났다고도 할 수 없다. 수많은 영화들이 상영되고 수용되는 구조는 철저히 상업적인 논리에 의해서 움직이는 까닭이다. 즉 관객이 몰리고 돈이 될 만한 영화들만이 주목받으며 상영될 뿐,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상업적인 논리에 따르지 않는다면 쉽게 외면 받고 잊혀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영화의 다시보기가 가능한 디지털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극장에서 관심을 끈 영화들은 VOD 시장에서도 인기가 있는 반면 상영관에서 금방 내린 영화들은 좀처럼 다운로드의 은덕을 받기가 어렵다. 홍수가 나면 물이 넘쳐나지만 먹을 물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쏟아져 나오는 영화들 사이에서 좋은 영화란 귀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의 달을 맞이하며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란 가족영화는 다시 한 번 보기를 강권하는 재미있고 의미 있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아버지의 부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김성호 감독의 화제작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아빠의 부재를 극복하려 하면 할수록 아빠의 빈자리가 커지는 상황을 통해 자녀에게 아빠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코믹하고 따뜻하게 전하고 있는 영화다.
이 영화가 전면에 내세운 비극적 상황은 부서진 가족과 가난의 현실을 통해 드러난다. 피자 가게를 운영하던 아빠는 파산한 채 홀연 집을 나가버리고 엄마(강혜정)는 폐차 직전의 미니 승합차 속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살아간다. 영화의 코믹한 상황은 열 살 먹은 딸 지소(이레)의 기상천외한 발상으로부터 시작된다. 가족의 편안한 잠자리와 자신의 생일파티를 위한 집을 구할 생각에 골몰하던 중 ‘평당 500만원’이라고 적힌 부동산 광고를 보고 ‘평당이라는 동네에 있는 500만원 가격의 집’을 사기 위해 부자 노부인(김혜자)의 개를 훔칠 황당한 전략을 구사한다. 결국에는 노부인에게 사실을 말하고 개를 돌려주려 하지만 지소의 행동은 어린 아이의 순수하고 착함 그대로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가난이라는 현실의 무거운 문제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주인공 지소와 아이들의 기발한 발상을 통해 관객을 끊임없이 웃게 만드는 코미디의 요소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슬프고 비참한 현실을 웃음으로 풀어내는 코미디 형식을 전문용어로는 ‘희비극' 이라 부른다.
영화는 가난이 주는 어렵고 난감한 상황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그러나 가난보다 슬픈 것은 가족의 상실이며 불화임을 아울러 보여준다. 지소가 엄마 때문에 아빠가 집을 나갔다고 말했을 때 엄마의 상처는 가장 깊어지고, 집을 나간 아빠가 여전히 가족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상처와 갈등은 회복되기 시작한다. 특히 노숙자 생활을 하는 대포(최민수)가 아빠 없는 지소의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것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의미 있는 부분이다. 지소의 아빠만이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한 고물 자동차를 소리 없이 고친 일이나 잃어버린 개를 찾기 위해 아이들을 오토바이가 끄는 수레에 태워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는 에피소드는 대포를 통해 아빠 역할이 수행됨으로써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뜻하는 까닭이다.
‘결함 있는 아버지’의 극복
뉴욕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폴 비츠 (Paul Vitz) 는 그의 책 ‘무신론의 심리학’에서 우리가 주목할 만한 연구결과를 적어놓았다. 그는 니체나 프로이트같이 오늘날 세속화된 서구문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무신론자들의 어린 시절을 연구하면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한 마디로 ‘결함 있는 아버지 가설’이라고 부르는 이론이다. 즉 아버지가 없는 가운데서 부성애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채 성장하거나, 학대와 알코올 중독, 가족에 대한 무관심 등 문제 많은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한마디로 ‘결함 있는 아버지’가 자녀들로 하여금 기독교 신앙을 외면하고 무신론자로 만드는 데 중요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운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안 계신 집은 어떻게 할까? 기독교 정치가의 모델로서 영국의 노예무역제도를 폐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윌리엄 윌버포스는 9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지만 온정이 넘치고 감리교 영성이 풍부한 삼촌으로부터 양육을 받았다. 특히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의 작사가인 존 뉴턴 목사를 아버지처럼 따랐던 것은 그가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음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기독교 신앙인으로 성장하는 데 아버지 역할을 대신한 좋은 남성 어른이 옆에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교회는 교인들을 형제와 자매로 부르는 신앙공동체다. 교인들의 자녀를 신앙적으로 양육하는 일을 개별적인 가정만의 책임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협력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 한국교회는 혹시라도 ‘결함 있는 아버지’를 둔 어린 청소년들에게 좋은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해 좋은 남성들이 있는지 찾아 나설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