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칼럼
갓피플매거진

위대한 역사를 담은 <명량>

최고의 흥행기록이 의미하는 것
김한민 감독의 영화 <명량>이 역대 흥행순위 1위에 올랐다. 개봉 12일 만에 천만관객을 돌파한 데 이어서 19일 만에 1422만 명을 넘어서면서 지금까지 미국 영화 <아바타>(2009)가 가지고 있었던 1362만 명의 기록을 단숨에 갈아치웠다.

제임스 카메룬의 <아바타>가 한국영화 <괴물>(2006)이 가지고 있었던 1301만 명의 기록을 깰 때 배급사나 언론은 모두 <명량>처럼 열광하지 못했다. 혹시라도 외국영화가 한국에서 최고의 흥행기록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한국인의 자존심을 건드려 미국의 메이저영화사들에 대한 반감이라도 살까봐 조용히 넘어갔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천오백만 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는 <명량>의 기록을 넘어설 영화는 당분간 나오기 쉽지 않은 까닭이다.

한국에서 천오백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이유를 밝힌 일은 단순히 영화가 ‘재미있다’라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한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괴물>이 부조리한 한국사회의 권력을 비판하며 가족의 단합된 모습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통해 관객들과의 교감에 성공했고, <광해, 왕이 된 남자>(2013)가 인간미 넘치는 왕의 모습을 통해 한국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도자상을 구현하여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는데 성공한 일이 있었다.

이와 유사하게 <명량>은 각종 사고와 사건이 끊이지 않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돌아보며 위기를 타파할 리더십을 발견했기 때문이며, 끊임없이 망언을 쏟아내는 가운데 군국주의의 부활의 길에 들어선 일본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조선이 일본을 물리치고 승리한 해전을 지켜보며 심리적 위안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한국사회를 뒤흔든 ‘세월호 사건’과 ‘유병언 일가의 재산은닉과 도피’, ‘군대내 가혹행위에 의한 윤일병 사망 사고’에 이르기까지 몇 가지 사고와 사건은 한국 사회의 리더십 부재를 드러내며 이순신과 같은 지도자에 대한 추앙과 바람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한 영화 <명량>은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선을 물리친 임진왜란의 가장 극적인 전투 명량해전만을 다룬다. 61분에 이르는 해전장면은 이 영화가 ‘임진왜란’이나 ‘이순신’에 초점을 두었다기보다는 관객으로 하여금 역사적 전투의 현장을 지켜보게 하려는 감독의 의도가 충실히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축구 한일전에서 우리가 역전승을 거두는 명승부를 보는 것과 유사하다. 목숨 걸고 축구하는 오늘날의 한일전을 경기장에서 관람하듯 우리는 명량해전의 명승부전을 손에 땀을 쥐며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명량>은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선을 물리친 임진왜란의 가장 극적인 전투 명량해전을 다룬다. 모함과 고문 속에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 된 상태로 삼도수군통제사에 재임명된 이순신(최민식)은 해전에 능한 왜구들의 우두머리 구루지마(류승룡)와 조선의 운명이 달린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된다.

<명랑>은 우리가 모르던 새로운 이야기를 전해주는 영화가 아니라, 현대라는 시간 속에 사는 관객들을 데리고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린 역사의 시간 속으로 현장체험을 떠나는 영화다.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고 떠들 수 있는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영화에 흐르는 진중한 분위기는 왜장의 의상과 음악을 통해 더욱 밀도깊게 전달된다. 고증을 거쳐 일본에서 제작되었다는 왜장들의 갑옷과 투구 그리고 마스크 등에서 흐르는 위엄과 전율은 일본에 대한 부정적 감정에 휘둘림없이 임진왜란 때 조선 백성들이 느꼈을 법한 공포감을 제대로 살려주었다.

백성의 발견 그리고 목자의 리더
백성과 함께 하는 이순신의 리더십은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비결이다. 본토가 왜군에 의해 짓밟히고 수탈당하자 난민이 되어버린 백성들이 간 곳은 이순신의 옆자리였다. 이순신을 따라 온 전라도 연안 백성들은 수군에게 의복과 식량을 제공하는 것뿐 만 아니라 배를 수리하고 만드는 일을 도왔다. 우리가 <명량>에서 주목하는 백성들은 전투에 직접 참가할 뿐 만 아니라 이순신을 구원하는 역할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군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조선은 위기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순신은 ‘애민적 리더십’을 통해 전세를 완전히 뒤집었다. 그런데 그 리더십은 적을 물리치는 전략가로서의 리더십뿐 만 아니라 백성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리더십이다. 궁극적으로 백성이 믿고 따르도록 만드는 데 이르러야 하는 리더십이다.

이번 여름 <명량>의 이순신만큼이나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뜨거운 환대를 받으며 프란치스코 열풍을 몰고 다녔다. 위기의 전쟁에서 위엄있게 피묻은 칼을 휘두르는 장수와 유머감각을 가지고 빈자들의 세상으로 낮아지려는 교황 사이에는 언뜻 보기에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현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공통된 리더십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낮은 자리에 처한 백성과 함께하는 리더십이며, 죽음 앞에서도 앞장서는 솔선수범(率先垂範)의 리더십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5월 전운이 도는 이스라엘을 방문했다. 유대교 지도자와 팔레스타인 지도자 등과 셋이서 나란히 사진을 찍은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종교 간 평화’에 대해 교황은 직접 현장을 방문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몸으로 자신의 뜻을 펼쳤다. 마약 중독자의 발을 씻고,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만나고 세례를 베풀기도 했다.

그는 파격적으로 몸을 통해 자신이 말한 것을 실천했다. 기독교와 가톨릭의 교리가 다르다고 교황의 방한 행적을 굳이 외면할 일이 아니다. 그는 벌써 대다수 한국인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했다. 이순신을 따른 백성만큼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교황을 따르는 이유를 우리는 눈여겨 보고 우리의 교회사역에 적용할 만한 것이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무릇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忠)을 따르는 것이고, 그 충(忠)은 임금이 아니라 백성을 향해야 한다”는 영화 속 명대사를 들으며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5)는 말씀이 생각나는 것은 나만의 일은 아닌 듯하다.

강진구
고신대학교 국제문화선교학부교수. 영화평론가. 서강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종교학을 전공했다.
저서《감성세대 여화읽기》이메일 moviejin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