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칼럼
갓피플매거진

마크 포스터 감독의 <월드 워 Z>

B급영화의 전형, 좀비영화
좀비(Zombi)는 죽은 자가 인격을 상실한 상태에서 ‘육체만 재생한 존재’를 부르는 말이다. ‘부활’이란 말은 좀비에게 쓰지 않는다. 기독교의 부활은 인간이 죽음을 경험한 이후 인격을 갖춘 존재로서 영과 육의 부활을 뜻하는 까닭에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죽은 시체가 살아 움직이는’ 형태의 좀비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좀비의 기원은 부두교에서 신도들을 조종하려고 육신을 착취하려는 의도로 약물을 사용한 데서 유래됐다. 하지만 공포를 극대화시키는 할리우드의 상업주의에 바탕을 둔 상상력의 맥락 안에서 설명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즉, 좀비를 실재 존재하는 사실로 여겨서 인간 사회에 영향을 줄지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편이 좀비를 바로 이해하는 첫 걸음이다.

영화사에 나타난 최초의 좀비영화는 빅터 핼퍼린(Victor Halperin) 감독이 1932년 제작한 <화이트 좀비> (White Zombie)로 알려져 있다. 이 영화 속 좀비는 주인에게 복종하는 노예로 묘사되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과 같은 형태의 좀비는 1968년 조지 로메로 감독의 1968년도 작품인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으로 비롯되었다. 이때부터 좀비는 드라큘라와 같은 흡혈귀의 특성을 갖추기 시작했다.

인간의 목을 물어뜯어 죽이는가 하면, 좀비에게 물린 사람은 또 다시 좀비가 되는 공포적인 존재로 발전했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은 왜 죽은 시체가 살아나는지, 그들이 인간을 공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개연성을 설명하거나 어떤 사회적 고찰도 하지 않았다. 저예산으로 관객의 흥미를 끌기 위해 만든 상업적 목적 외에 어떤 의미도 관객들에게 전달하지 않는다.

적은 제작비로 관객의 이목을 끄는 데는 호러무비(공포영화)만한 것이 없다. 또한 호러무비는 적은 제작비로도 관객에게 끔찍한 공포를 제공해줄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이며 효과만점인 B급 영화로 최적의 장르이기도 하다.

이 좀비영화는 영화를 본 사람뿐만 아니라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조차 회자되기 시작했고 로메로 감독은 두 번째 좀비영화인 <시체들의 새벽>(Dawn of the Dead, 1978)을 통해 좀비를 대중문화의 관심사로 떠올렸다.

좀비를 세계적 재앙의 원인으로 만들다
‘007 시리즈’중 하나인 <퀀텀 오브 솔라스>(2008)를 연출한 마크 포스터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영화 <월드 워 Z>는 역사상 가장 많은 제작비가 들어간 블록버스터급의 좀비영화다.

약 2억 달러(한화 2천2백60억 원)의 막대한 제작비를 들이고 세계적인 스타를 기용한 것은 좀비영화의 새로운 사회적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 계기로 작용한다. 지금까지 좀비영화는 저예산의 B급영화로 인식되었고 유치하고 폭력적이며 괴기스러운 공포물이란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좀비영화는 신체에 가해지는 막강한 폭력행위에 대한 비판을 ‘정당한 살인’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면서 피해갔다. 잔인하고 무차별적인 살상을 즐기는 유일무이한 살상중심 장르로서 자리잡았다. 좀비는 웬만한 총격이나 타격을 줘도 죽지 않는다.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의 저자인 맥스 브룩스에 따르면 좀비를 죽이는 방법은 뇌를 파괴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좀비의 머리를 가격하거나 총을 쏘는 장면이 좀비영화에서는 필수적이다. 최근 좀비영화들은 많은 숫자의 좀비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상대적으로 느린 좀비의 행동에서 더욱 공포감을 자아내게 만든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좀비들을 대량 살상하고 위기를 모면하는 구조를 취하면서 잔인한 폭력이 정당화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월드 워 Z>가 지니는 좀비영화의 차별성은 세계화되고 진화된 좀비의 특성에 있다. 알지 못하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가 전세계로 퍼져나가면서 지구는 종말의 위기상황을 맞게 된다. 인간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이 영화의 좀비는 1.6초 당 한걸음을 걷던 이전의 느린 좀비와는 달리 매우 빠른 행동양식을 보인다.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사실은 좀비가 심각한 질병에 감염된 인간은 마치 유령을 대하듯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좀비 스스로가 자신을 보호하려는 듯 질병에 걸린 사람은 회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를 간파한 주인공의 노력으로 인간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된다. 장티푸스나 콜레라 같은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이 좀비로부터 인간을 구원하는 역할을 하는 역설이 이 영화가 관객에게 제공하는 철학적 의미이다.

알 수없는 위기와 뜻밖의 구원
좀비는 인간의 상상력이 만든 공포의 결과물이다. 그들은 좀처럼 죽지 않으며, 좀비에게 물린 인간은 또 하나의 좀비가 되면서 기하급수적인 확산을 가져온다. 첫 좀비가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그 근원은 알 수 없으며, 좀비에 물린 사람을 치료하는 방법을 언급한 영화는 아직 없다.

이 때 좀비는 지구위기에 관한 메타포로 이해할 수 있다. 중세의 흑사병으로 유럽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졌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현대인들은 조류독감이나 에이즈, 에볼라 바이러스 등 접촉과 전염으로 온세계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공포와 두려움의 정서를 좀비영화를 통해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월드 워 Z>에서 할리우드가 제시한 좀비로부터 구원 방법은 전직 UN요원과 과학자의 몫이었다. 영화에서 종교는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지지받지 않는 듯 보인다. 종교를 상징하는 예루살렘 성벽이 좀비로부터 점령당하는 것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대신 할리우드는 UN이라는 정치적 타협체와 합리적 과학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의 존재를 위협하는 온갖 징조들이 나타날 때마다 UN과 과학의 역할이 두려움을 이기고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 될 수 있을까? 정치와 과학 모두를 통합할 수 있는 기독교세계관적 안목이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과제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여러 나라의 길을 배우지 말라 이방 사람들은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거니와 너희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렘 10:2).

강진구
고신대학교 국제문화선교학부교수. 영화평론가. 서강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종교학을 전공했다. 저서《감성세대 영화읽기》이메일 moviejin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