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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맡기신 그분의 마음 - ‘SKY LIFE’의 작가 김선미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 이모티콘으로 친구에게 말을 걸고 있다면, 하나님은 꽃으로 말을 거시고 반짝이는 별빛과 바람으로 함께하신다”고 고백하는 ‘SKY LIFE’의 김선미 작가. 그녀의 이야기에서부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묵상하게 된다. 우리가 메신저에서 이모티콘을 보내며 대화에 열중하고 있을 때, 김선미 작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그것들로 하나님의 사랑을 담아내고자 했다.

우리 마음 문을 두드리시며 자신의 사랑을 전하시는 그분의 모습을. 그녀는 최근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대중에게 익숙한 작가 고흐와 밀레의 그림과 메신저 이모티콘을 패러디해 재미와 메시지를 함께 전한다. 김선미 작가의 작품 중에 ‘퇴근길?은혜가 내립니다, 말씀이 내립니다’라는 그림은 은혜를 눈송이로, 말씀을 네모종이로 표현하며, 우리가 진짜 바라봐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모태신앙인 김선미 작가는 30대 때 남편을 만나 결혼 후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과 진한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김선미 작가는 귀국 후 백석대학교 기독교전문대학원에서 기독교미술을 전공, 졸업하기까지 매학기 등록금을 채워주신 하나님을 경험했다며 끊임없는 감사를 고백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김선미 작가는 이미 하늘의 삶을 살고 있다고 느껴졌다. 화폭에 가득 담긴 그녀의 그림처럼 말이다.

첫 전시를 준비하면서 주님이 주신 마음이 있었을까요?
아무래도 첫 번째 개인전이라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준비를 시작할 때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전시가 되면 좋겠다는 막연한 마음만 가지고 있었죠. 전시준비에 집중하면서 기도하고 말씀을 볼 시간이 없어서 ‘주님, 제가 이렇게 그림을 그리는 게 맞나요’라고 물을 정도로 어려운 마음이 있었어요. 저처럼 세필(가는 붓)로 100호의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건 인내와 노동이 많이 필요한 작업이에요.

전시를 열흘 앞둔 시점부터 낮에는 학교에서 100호를 마무리하고 밤에는 집에 와서 작은 작품들을 그렸어요. 전시 5일 전쯤 그림을 그리는 중에 ‘왜 전시를 통해 복음이 전해지길 기도하지 않니?’라는 마음이 들면서 주님 앞에 회개하게 됐어요. 저는 이 전시가 주님의 기쁨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고, 그저 이렇게 전시를 하는 게 맞는지만 고민하면서 헤매고 있었으니까요. 기도 후 주님이 가장 귀하심을 찬양으로 고백했고, 다음 날 예배 중에 주님이 전시회를 기뻐하신다는 마음을 주셨어요. 그러면서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요 13:23)는 말씀처럼 주님만 의지해서 살기 원한다는 기도를 드렸지요.

전시회 동안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해지네요.
다음날 전시 오프닝 예배의 주보제작을 위해 목회자이시기도 했던 담당 교수님이 말씀을 전해주시기로 해서, 본문과 제목을 여쭤봤어요. 답문이 왔는데 기도하면서 제가 받았던 요한복음 13장 23절 말씀이었어요.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아시고 응원해주신다는 감사함에 또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그때부터는 전시회를 통해 복음이 전해지길 힘썼던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전시회 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학교 친구인 이요셉 작가의 《결혼을 배우다》를 사서 오프닝에 오신 손님들에게 한 권씩 선물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나누게 되었어요. 그리고 우연히 전시장에서 대화하게 된 한 자매가 성삼위일체가 믿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한참 동안 예수님을 전할 시간도 가졌어요. 그 후에 동숭교회 카페 갤러리에서 전시를 했는데, 제 그림이 통로가 되어 주님이 일하시길 기도했죠.

남편과 독일에 있다 한국으로 오신 걸로 알고 있어요.
브레멘에서 살게 됐는데, 처음에는 어르신들이 많은 독일교회를 다녔어요. 독일 할머니들이 저를 너무 예뻐해주셨지만 독일어로 소통이 되지 않으니 영적인 공급을 받기가 어려웠죠. 갑자기 바뀐 환경 때문에 외로움도 느꼈고요.

유학 초기에는 정말 우울증에 빠지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로 마음이 좀 힘들었어요. 그래서 남편이 그런 저를 위해서 새로 생긴 한인교회에 출석하기로 결심하게 되었죠.

영적인 공급은 계속 갈급했던 상태였을까요?
그 교회에서 한국에서 큐티사역을 했던 한 집사님을 만나게 되었고, 또 지금까지 15년의 시간을 한결같은 사랑으로 교제하는 노미애 권사님 가정을 만나게 되었어요. 모태신앙이었지만 경건의 훈련이 전혀 되어있지 않았던 제가 큐티훈련을 받으면서 하나님 앞에 나가는 첫 발을 떼게 되었어요. 사랑의 은사자인 노 권사님과의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도 배우게 되었어요. 그러면서도 점차깊이 기도하는 것에 갈급함이 커져갔는데, 한국으로 귀국을 했어요.
그러다 한 크리스천 기업의 중보모임에 나가면서 모임을 인도하는 선교사님을 통해 그 때부터 더 집중적인 기도와 예배의 훈련을 받게 된 것 같아요.

큐티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의 자리까지 가신 거네요.
독일에서는 큐티를 한다고 했지만 기도가 부족하니 여전히 말씀이 삶 가운데 능력이 되지 못하는 상태였어요. 결국 큐티를 제대로 못한 거죠(웃음). 남편은 독일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석사를 졸업했지만 일이 꼬이기 시작하면서 2,3년으로 예상했던 박사 과정이 8년이 지나도록 끝나지 못했어요. 남편의 박사학위 취득기한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았던 때에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게 기도하지 못하고 있던 저를 발견했어요. 괴로운 현재 상황을 해결해 달라는 기도는 하지 않고 주님 뜻대로 되게 해달라고만 기도했어요.

물론 이게 맞는 기도이긴 하지만 성경지식만 좀 아는 영적 어린아이가 마음을 숨기고 어른인 척, 성숙한 기도를 흉내 냈던 거죠. 이후 결국 정확하게 주님이 당신의 때에 모든 걸 선하게 이루신다는 걸 체험하게 되었어요.

서울대학교에서 도예를 전공하셨고, 백석대학교대학원에서는 기독교미술학과를 전공하셨더군요.
독일에 갔을 때 미대 시험을 봤는데 생각지도 못한 형편 없는 점수로 떨어졌어요. 한국에서 나름 인정받는 대학을 나왔다는 자만이 있었기에 사실 충격이 너무 컸어요. 제가 테크닉만 뛰어나고 창의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였죠. 독일의 미술 경향과도 맞지 않는 포트폴리오를 냈다는 걸 나중에 알았지만 당시에는 형편없는 실패가 준충격으로 독일에 있는 10년 동안 미술과 관련된 건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요. 귀국 후 취미로 도자기에 그림 그리는 걸 배우기 시작했는데 이건 비전공자들도 웬만하면 다 따라하는 거라 정말 가난한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었죠.

어느 날 교제하게 된 한 대학 도예과 교수님에게 제 그림을 보여드렸더니 강사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어요. 이후 주변 분들이 더 공부하라고 권유하셔서 처음엔 당연히 모교인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백석대학원의 기독교미술학과를 알게 되었어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학교가 천안에 있고, 등록금도 더 비싸고 저는 도자기 작업을 할 건데 회화전공하신 교수님들과 잘 안 맞을 것 같다는 이유를 들어 이 학교는 아닌 것 같다고 주님께 기도했어요.

기도하면서 어떤 인도하심이 있었던 건가요?
얼마 후에 백석 기독교전문대학원은 서울 방배동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또 하루는 교제하는 집사님이 기독교세계관을 가지고 작업을 하려고 하면서 왜 크리스천 지도교수님이 없는 곳에 가려고 하냐고 하시는데 바로 ‘응답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그래서 백석에 들어가게 되었죠. 첫 학기 등록금을 놓고 계속 기도하는데 한 통장이 마음에 떠올랐어요. 아버지께서 1,2년 전에 제 이름으로 청약통장을 만들어두신 게 있었는데 기한이 안 되어 찾을 수 없는 거라 아예 생각도 안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기도 중에 자꾸 떠올리게 하셔서 알아보니 제가 기한을 잘못 알고 있었더라고요. 그래서 그걸로 첫 학기를 해결하고 이후 매학기 모두 기적처럼 주님의 공급하심이 있었어요. 두 번째 학기에도 놀랍고 감사한 방법으로 해결해주셨죠.

그 해 여름에 기독교미술대전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교수님도 칭찬하신 작품이라 은근히 큰 상을 기대했어요. 대상은 상금이 500만원이었거든요. 두 작품을 냈는데 결과는 대상을 기대했던 작품은 특선을 받았고, 제 신앙고백이 담겨있는 작품은 낙선이 됐어요.

마음이 쉽지 않았겠어요.
상금이 없다는 것보다 제 신앙고백이 담긴 작품이 낙선을 했다는 게 마음이 더 힘들었어요. 제가 순수하게 그림을 그리지 못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셨나보다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얼마 후 가을에 강원미술대전을 준비하며 원래 내기로 한 작품이 완성이 안 되어 할 수 없이 낙선했던 신앙고백 작품으로 대신 냈는데 그게 거기서 대상을 탔어요. 강원미술대전 대상으로 받은 상금이 다음 학기 등록금과 그 해 겨울에 예정되어 있던 저희 부부의 일본 단기선교 비용을 정확히 해결해 주는 금액이었고요.

대학원을 다녔던 시기는 제가 결혼 12년 만에 생긴 아이를 유산한 직후였고, 또 가정적으로도 문제가 겹쳐 어찌 보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였는데 학교에서 그림 배우고 작업하는 동안 정말 행복했어요. 돌아보니 고난의 시기에 가장 행복했으니 역설적이죠?(웃음). 조이어스교회에서 영적인 공급도 받았고요.

재정의 훈련 가운데 고백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한마디로 하면 신명기 8장 3절과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이에요. 이 말씀이 제 삶 가운데 실제가 되었어요. 하나님은 세상적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환경인데 하나님과 동행하며 믿음으로 기쁘게 살아가시는 분들을 많이 만나게 해주셨고 그 분들이 저희 부부에게 고난 가운데 믿음으로 사는 법을 가르쳐 주셨지요.

SKY LIFE 전시문의 sssum@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