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ㆍ문화
김유비의 행복문답

다른 복음은 없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여러분을 부르셨는데, 여러분이 다른 복음을 믿는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여러분을 혼란스럽게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꾸려 하고 있습니다.(갈라디아서 1:6-7)

사기 쳐서 다른 사람 인생 망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말을 지어내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진실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말해서 신뢰를 얻습니다.

신뢰를 받으면 새로운 사실을 조금씩 덧붙입니다. 당연히 거짓말입니다. 진실 그 자체는 밋밋합니다. 진실 속에 덧붙인 거짓은 화려해 보입니다.

“은행에 적금 넣으면 금리 2%, 같은 돈으로 투자하면 수익 1000%” 차이가 확 드러납니다. 그러니까 속습니다. 고수는 처음부터 거짓말 안 합니다. 진실에 거짓을 조금씩 보탭니다. 사기당한 사람 바보로 보면 안 됩니다.

사기 치는 사람이 대단한 겁니다. 사람을 얼마나 믿으면 자기 돈과 인생을 내다 맡기겠습니까. 사기 제대로 치면 아무도 못 당합니다. 사기꾼 눈에 안 띄는 게 축복입니다.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 역시 똑같은 방법으로 당했습니다. 다른 복음을 전한 거짓 교사들은 처음부터 거짓말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그 자체를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처음부터 율법과 할례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면, 성도들은 현혹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동의했습니다. 다만, 율법과 할례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니 함께 지키자고 말한 겁니다. 듣는 입장에서 나쁠 게 없었습니다. 성도들은 두 발 자전거에 보조 바퀴를 붙인 겁니다. 보조 바퀴까지 달았으니 절대로 넘어질 일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투자 대비 보상이 확실하다고 믿은 겁니다. 적어도 잃을 건 없으니까요.

바울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율법과 할례는 보조 바퀴가 아니라 돌덩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돌덩이를 매달고 자전거를 탈 수 없습니다.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을 짓누르고 있던 돌덩이에서 벗어나게 해준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원한 생명이 주어졌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과 할례라는 돌덩이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진정한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내버린 돌덩이를 다시 들고 와서 자전거에 매달면서 휘파람을 불고 있는 겁니다. 바울 입장에서 얼마나 화가 나고 당황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방심하면 안 됩니다. 왜곡된 복음은 언제나 우리를 현혹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하나 둘 다른 것을 매답니다. 처음에는 티가 안 나지만, 점점 무거워집니다. 신앙생활이 모래주머니를 차고 걷는 것처럼 무겁다면 우리는 왜곡된 복음에 묶여 있는 겁니다.

의무와 형식에 얽매인 신앙생활에는 진정한 자유가 없습니다. 의미와 본질이 우선입니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공로와 노력이 끼어들 틈은 전혀 없습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은 기뻐합니다.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나 역시 그랬습니다. 목회할 때,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닙니다. 기쁜 마음으로 설교하고 상담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몸과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나중에는 걸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는 의무감에 사로잡혔습니다. 좋은 목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맞이하고 싶었습니다. 결국 무너졌습니다.

“목사라면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한다. 해야 한다. 해야 한다. 해야 한다.” 목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에 중에 나쁜 건 없습니다. 다 좋은 겁니다. 그러나, 나는 벅찼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안 그런 척, 나는 괜찮은 척했습니다.

그게 더 괴로웠습니다.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나는 목사이기 전에 한 사람의 성도가 되고 싶었습니다. 나는 나를 잘 압니다. 나는 목사로 살아갈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은혜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겸손이 아닙니다. 진실입니다.

솔직히 나는 목사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목사 직분 받는 게 내 인생의 목표였던 적 없습니다. 은혜로 받은 구원에 감격해서 주님을 따라 살다 보니 어쩌다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나는 목사와 성도가 살아갈 삶을 구분하고 싶지 않습니다.

목사의 복음 따로 있지 않습니다. 장로, 권사, 집사, 성도. 각각의 복음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예외 없이 단 하나의 복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신 은혜의 복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