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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따라걷기 #02] 예루살렘과 그 주변 : 실로암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 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요 9:6,7)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하던 무렵 유다 왕 히스기야는 유다도 이스라엘 패망의 길을 똑같이 걷지 않을까 노심초사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앗시리아의 산헤립이 유다를 정벌하기 위해서 내려온다는 흉흉한 소문이 심심치 않게 히스기야의 귀에 들려왔기 때문입니다.

기드론 골짜기와 힌놈 골짜기가 만들어낸 천혜의 절벽으로 둘러싸인 예루살렘은 성의 북쪽만 막아내면 되는 견고한 성이었습니다만, 이런 예루살렘 성에도 한 가지 결정적인 단점이 있었는데, 온 예루살렘 주민에게 공급되어야 할 물의 근원인 기혼샘이 성 밖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만약의 침공을 대비해서 물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혼샘의 물을 예루살렘 성 안으로 끌어들이는 대규모의 토목 공사를 하게 됩니다. 기혼샘에서부터 지하로 물길을 만들어서 예루살렘 성 남쪽에 대규모의 물 저장고를 만드는 것이지요(대하 34:2-4).

이 공사를 성공적으로 끝낸 후, 히스기야는 기혼샘에서 흘려보낸 물이 채워져 만들어진 이 물 저장고를 실로암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히브리어로 “보내다”라는 말에서 비롯된 이름입니다. 

[caption id="attachment_80254" align="alignnone" width="790"] 실로암 상상도 :“보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기혼샘에서 “보내진” 물이 저장되는 공간이다. 전에는 히스기야 터널에서 나오자마자 있는 비잔틴 시대 유도시아(Eudocia) 황후가 세운 실로암 못가의 교회 유적을 실로암으로 기념하였다. 그러나 유적 바로 남쪽 팔레스타인 사람의 땅을 사들이고 발굴을 시작하면서 2004년에 비로소 실로암의 정확한 위치와 본 모습의 일부를 알게 되었다. 2007년부터 일반에 개방된 실로암은 물 저장고의 동쪽 일부가 드러난 채로 있다. 뿐만 아니라 성전에서 실로암으로 내려가는 계단 역시 발굴되었다.[/caption]


하지만 유다 왕국이 늘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었던 것은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전쟁이 없던 시절에는 이 실로암을 정결욕조로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가기 위해서 백성들은 반드시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정결예식을 해야 했는데, 정결예식은 정결욕조라고 불리는, 물을 담아두는 공간에 옷을 벗고 들어가서 온 몸을 물속에 담갔다가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성전에는 수많은 사람이 늘 붐볐습니다. 그리고 명절 때에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여들었습니다. 성전의 주변에 많은 정결욕조들이 있었지만, 한꺼번에 몰려드는 사람들을 감당하기에는 벅찼습니다. 그래서 실로암은 대규모의 인파를 수용할 수 있는 안성맞춤의 정결욕조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땅에 침을뱉고 그것으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못에 가서 씻으라 하셨습니다(요 9:6,7). 우리말 성경에는 ‘못’이라고 되어 있지만 물 저장고이지요.

왜 다른곳이 아니라 실로암일지 생각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추측하기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도는 아마도, 성전을 가기 전 정결욕조로 사용되고 있는 “실로암에서 눈과 몸을 씻고 성전으로 올라가서 가장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명령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나병환자 열 명을 고쳐주시고 그중에 한사람만 돌아와서 예수님께 감사드렸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눅 17:11-19), 감사할 줄 모르는 아홉 명이 참 답답한 사람들이라고들 생각하지만, 그 아홉 중 하나가 ‘나’라는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교육 전도사 시절, 가장 바쁜 때 중에 하나가 수능 시험을 앞둔 때입니다. 수능생들을 위한 특별기도회를 준비해야 하거든요. 그동안 새벽기도와 거리가 멀었던 이들도 자녀들을 위해 열정적으로 기도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수능 시험이 끝나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던 교인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자녀들의 학교가 발표되고 합격 통지서를 두 손에 받아들면 말이지요, 이 모든 결과는 다 “우리 아이가 열심히 공부해서”라고 합니다. 또는 아이와 함께 밤낮을 함께한 부모의 열정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시험 전에는 자녀에게 담대함과 지혜를 달라고 목사님들을 찾아와 안수기도를 받다가도, 합격 통지서를 받아들고 교회를 찾아와서 이 모든 결과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기 때문에 가능했노라고, 청년의 때를 신앙 가운데 보내겠노라고, 너무 감사하니 기도해달라고 기도를 받으러 오는 이들을 저는 아직까지 단 한 명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실로암에서 고침을 받았던 그 사람은 그길로 하나님께 예배와 감사를 드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는데(요 9:28), 오늘 우리는 그길로 못 본 척,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난 원래 부터 앞을 잘 보았던 사람인 양, 예수님을 떠나고 있는 듯하여 마음이 무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