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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삶이 하나 되는 기획자


《젊은 기획자에게 묻다》의 작가이자 기획자인 김영미. 그녀는 ‘월간 디자인’의 기자를 시작으로 디자인컨설팅 회사 이노디자인의 기획, 홍보, 마케팅 담당을 거쳤다. 대학원 4학기 때 한 미술잡지사에서 재불 화가들의 작품을 모아 단행본을 제작했던 일이 그녀가 처음 기획했던 일이었다. 이후 인도에서 2년 동안 지내고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해비타트 협력개발국장을 역임했다. 지금은 비영리기구인 오픈핸즈의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녀가 경험한 직업은 다양하지만 분야를 막론하고 ‘기획’이 빠지지 않았다. 무엇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기획안을 짜고, 협업자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일이 되게 만드는 사람이 바로 기획자다. 그녀는 《젊은 기획자에게 묻다》에서 기획이 모든 일의 시작이자 결과를 향한 과정이라고 말한다. 결국 기획의 본질은 자신이 속한 곳에 애정을 갖고 그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새로운 도전을 하는 일이었다.

젊은 기획자들이나 기획이 무엇인지 궁금한 이들에게 그녀의 이야기가 직업관을 잡아주는 데 방향성이 되어주길 기대한다. 그녀가 기획자로 살면서 세밀히 만났던 하나님과 관계 또한 엿볼 수 있어 흥미로울 것이다.
글 김경미 사진 도성윤

새로운 일을 통해 단단해지다
김영미 사무국장은 비영리 NGO 오픈핸즈의 많은 일의 시작과 끝을 맡고 있다. 오픈핸즈는 저개발국가의 식수오염지역에서 깨끗한 물을 먹을 수 있도록 돕는 ‘워터백’을 설치하고, 화장실 건축 등을 지원해오고 있다. 후원자들의 참여로 오염된 물과 열약한 환경에 노출된 이들을 보호하고, 건강하게 자립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데 힘쓰고 있다. 최근에는 조이어스교회(박종렬 목사 담임) 아웃리치팀과 함께 필리핀 바타안 주의 원주민 마을 환경개선사역을 위해 현장에 다녀왔다.

위 : 끼나라간 마을의 공동화장실 건축 | 아래 :오픈핸즈 워터백

“벌써 30여 마을에 2,000여 개의 워터백이 공급된 필리핀 현장을 보면, 저희가 하는 일은 정말 작은데 그 작은 일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 앞에 감사할 뿐이에요. 또한 직접 현장에서 봉사에 참여하고 돌아오면 많은 분들이 놀랍게 바뀌는 것을 봐요. 우리의 준비가 미흡해도 각자에게 훨씬 많은 것을 예비해놓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죠.”

김영미 사무국장은 출판 편집, 기자, 기획자 홍보, 마케팅, 문화교육 강의, 브랜드 개발 등 정말 다양한 일을 해왔다. 영리법인에서 10여 년 일한 그녀가 비영리 분야로 큰 점프를 하게 된 계기가 가장 궁금했다.
“2년 정도 인도에서 체류하다가 귀국해서 다시 디자인계 일을 시작할까 망설이고 있을 때, 해비타트라는 국제 NGO의 한국본부 협력개발국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이 들어왔어요. 전문적인 영역으로 봤을 때는 정체성의 큰 변화이자 전혀 새로운 영역에의 도전이었죠. 사실 비영리분야에 대해 잘 몰랐고, 오히려 현실적인 문제로 고민하며 주저하던 중에 당시 한국해비타트 회장님이 보내주신 글을 통해 많은 도전과 강한 이끌림을 발견했어요. 해비타트의 선배님이라고 할 수 있는 최영우 대표님((주)도움과나눔 대표이사)이 쓴 비영리분야와 모금가에 대한 글이었는데요. 지금 읽어도 영감을 많이 주는 글이에요. 그 이후로 국내외 소외된 이웃을 돕고 희망을 나누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니까 그동안 갖고 있었던 물질에 대한 가치관도 바뀌더라고요.”

가치를 찾아주는 역할
그녀는 모태신앙이었지만 30대 중반까지 삶의 우선순위가 항상 일 중심이었다. 디자인 업계에서 10년 넘게 기자와 마케터로 일하면서, 출산휴가를 못 채울 정도로 삶보다 일이 먼저였다. 그러다 한국해비타트에서 보낸 3년은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몸소 배웠던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삶과 일이 분리됐던 인생에서 삶과 일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가치를 깨달았다. 그러면서 30대 후반에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났고, 섬기고 있는 조이어스교회에서 신앙이 단단해지고 있다.

“젊었을 때는 일과 삶의 분리가 굉장히 명확했어요. 점점 일이 삶이 되고, 삶이 일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삶을 사는 제 모습을 봐요. 일과 삶이 분리됐을 때는 일로 인한 스트레스가 컸는데요. 지금은 스트레스가 없는 건 아니지만 시각이 달라지니까 수용 가능한 깊이가 달라진 것 같아요.”

일의 모습이나 직함은 다르지만 그녀는 기획하는 일을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기획자다. 기획하는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자세히 듣고 싶었다.
“비영리법인에서 하는 기획과 실행은 일반기업보다 예산, 자원, 조직의 제약이 있어요. 하지만 방법론적인 고민에서는 영리기업들과 다르지 않아요. 지금 일하는 오픈핸즈에서도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분들이 후원자로 참여해서 더 많은 아이들에게 건강한 물을 마시게 할까를 고민하며 제한적인 자원 안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가치 있는 방법들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죠.”

기획자의 일, 기획자의 꿈
그녀는 1년 동안 9명의 기획자들을 만난 경험을 모아 《젊은 기획자에게 묻다》를 출간했다. 그런 책을 엮을 수 있었던 이유도 그녀가 자신이 하는 일을 향한 남다른 열정과 애정 덕분이리라.
“실제로 기획의 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도 기획자라는 관점으로 자신의 일을 바라보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일을 어떤 타이틀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위한 기획의 과정과 그 열매로 바라보게 되면 새로운 분야의 일도 더 많이 만들어지고 직업에 대한 관점도 다양해질 거 같아요. 기획은 분야가 다를 수 있지만 본질은 하나라고 봐요.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것인가 그리고 지금 당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무엇인지 잘 돌아보세요.”

위 : 조이어스 필리핀 아웃리치 | 아래 : 올해 처음 워터백이 보급된 필리핀 팍빌라오 지역

그녀는 다양한 영역의 기획자들을 만나면서 오히려 기획자로서의 자신을 많이 되돌아보고 정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책이 일의 본질에 대한 공감의 요소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기획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일까.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찾아내서 잘 이루고 싶은 마음은 자신의 업을 사랑하는 모든 기획자의 원동력이 아닐까 싶어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획은 일이 아니라 삶으로 나의 일을 바라보는 게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봐요. 책을 준비하며 만난 기획자들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비영리단체 모금 기획자인 김은영 씨가 사람을 뽑을 때 기술이나 능력보다 ‘그 일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먼저 보게 된다는 말에 공감했어요. 가장 중요한 건 정말 ‘절실한 마음’인 것 같아요.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남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는 것처럼 기획하는 내 마음이 먼저 움직여야 그 기획을 통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거죠.”

사단법인 오픈핸즈 후원 참여하기 | www.openhands.or.kr
젊은 기획자에게 묻다

인터뷰와 글 : 김영미
남해의 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