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앞에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습니다. 그 종이를 6등분 해보세요.
이제부터 당신은 상상의 이야기를 만들 것입니다.
첫 번째 칸에는 이야기의 주인공을 그립니다.
(주인공은 사람, 동물, 식물, 사물 등 무엇이나 가능합니다.)
두 번째 칸에는 주인공이 해야 하는 일을 그립니다.
세 번째 칸에는 주인공의 일을 방해하는 것을 그립니다.
네 번째 칸에는 주인공의 일을 도와주는 것을 그립니다.
다섯 번째 칸에는 주인공이 그 일을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그립니다.
(이 때 주인공, 방해자, 조력자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 과정을 상상해보세요.)
여섯 번째 칸에는 주인공이 이후에 어떻게 살았는지 그립니다.
위에 소개한 ‘여섯조각이야기’는 스토리텔링에 기반한 연극치료의 진단평가 도구입니다. 참여자의 스트레스 대응 기제의 유형을 파악하기 위해 개발되었지만, 내용을 여러 면으로 읽을 수 있기에 현재는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민지(여, 6학년)가 만든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목: 장갑 찾기 소동)
1) 주인공은 달에 사는 토끼, 꿀끼입니다. 2) 꿀끼는 자신의 검은 손을 감춰줬던 하얀 장갑을 잃어 버렸기에 이 장갑을 찾아야 합니다. 3) 물에 빠진 장갑을 발견했지만 꿀끼는 물이 무섭습니다. 4) 다행히 꿀끼에게는 튜브가 있지요. 5) 용기를 낸 꿀끼는 장갑을 되찾았고 6) 다시 하얀 손의 꿀끼가 되었답니다.
이야기만 보면 비교적 건강해 보입니다. 주인공은 능동적이고, 결론은 긍정적입니다. 전반적인 정서가 밝고 이야기의 완성도도 높은 편입니다. 실제로 민지는 똑똑하고 야무진 아이로 학급에서는 늘 임원을 하며 어른들과 친구들에게 신임을 얻는 밝은 아이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가지고 즉흥극을 만들자 민지의 다른 모습이 드러났어요.
꿀끼가 달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여 달라고 부탁했을 때, 민지는 친구들에게 인사하는 꿀끼를 보여주었습니다. 물 앞에서 갈등하는 꿀끼에게서는 두려움과 함께 장갑을 향한 간절함이 보였고, 도와주는 이 없이 튜브만으로 용기를 내는 모습은 안쓰러웠습니다. 장갑을 찾았으니 다 해결됐다고 하는 민지에게 꿀끼의 삶을 더 살아보게 했습니다. 연극치료사가 친구 역할로 투입되었지요.
친구가 다가와 악수를 하고 반갑다며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 때, 꿀끼는 벗겨질지 모를 장갑을 살피느라 밝게 웃지 못했습니다.
“야, 넌 왜 매일 장갑을 끼고 있냐? 알고 보면 손이 검은 거 아냐? 하하하.”라며 아무 것도 모르는 친구가 농담을 던질 때, 꿀끼는 아니라며 웃었지만 얼굴은 점 점 굳어갔어요.
친구가 함께 물놀이를 가자고 조르자 꿀끼는 어쩔 줄을 모릅니다.
“난 물이 무서워서 못 가.”
“손이나 발만 담그면 되잖아. 응? 같이 가자!!”
“아니... 난...”
이쯤 되자 지켜보던 다른 친구들, 그리고 민지 자신도 민지에게 어떤 이슈가 있는지 눈치 채게 되었습니다.
“저는 친구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힘들어요. 다른 애들은 자연스럽게 잘만 어울리는 것 같은데... 저는 약점이 드러날까 봐 항상 두려워요.”
“민지야, 네 약점이 뭐라고 생각하는데?”
“제 약점이요?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민지에게 한 주 동안 자신의 약점을 생각해오라는 과제를 내주었습니다.
다음 주에 온 민지는 “찾아봤는데... 뚜렷한 약점은 못 찾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민지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이 친구는 이래서 나랑 안 맞고, 저 친구는 저래서 나랑 안 맞는, 자신만의 틀’이 강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이건 약점이 아니라 고쳐야 할 점이었기에 스스로 인식하면서 조금씩 바꿔 갈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려워하는 사람 중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는 약점이 있어서...” “저를 깊이 알게 된다면 별 거 없다는 걸 알고 실망할 거예요.” “저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사람이 아니에요.” 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약점을 찾아보라고 하면 뚜렷하게 찾지 못합니다.
그저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요.
자신의 약점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다가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다가갔다가 거부당해 상처만 받을까봐 두렵다면, 좀 더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약점의 실체’를 탐색해보세요.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과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것, 바꿔야만 하는 것과 바꿀 필요가 없는 것 등으로 구분해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런 후에 노력해도 쉽게 고칠 수 없는 약점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달란트’가 아닌지 살펴보세요.
성경(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종들에게 그 재능대로 달란트를 맡긴 주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는 달란트를 내가 가진 ‘재능, 매력, 강점’ 등으로 이해하기에, 한 달란트 받은 종보다는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을 부러워합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각각에게 맞게 주신다는 것을 알고 그 분이 선하시다는 것을 믿는다면, 약점 또한 나에게 주어진 달란트라 여기고 이를 잘 다듬어 귀한 도구로 사용해야 합니다.
어느 장애인 선교단체 간사님께서 자신이 가진 장애를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로 여기다고 하셔서 놀란 적이 있습니다.
달란트가 그런 거라면 다섯 달란트씩이나 주실 필요 없다고, 한 달란트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사양할 저를 깨닫고는 창피했지만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지요.
만든 이야기를 바꿔 보라는 미션에 민지는 아이다운 순수함으로 극적인 변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고 많은 친구들에게 환영받는 이야기였어요.(제목: 검은 손 토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기, 이것은 살아가는데 매우 필요하고 중요한 힘이라 민지가 이야기를 바꿀 수 있게 된 것이 무척 반가웠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지요.
약점을 드러내기도 쉽지 않지만 환영받기는 더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 그대로의 나를 스스로가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 그대로 받아주는 누군가를 만나고,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다음 주에 민지를 만나면 ‘자신의 검은 손을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꿀끼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어봐야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일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