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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비의 행복문답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상에서 우리를 건지시고, 우리 죄를 씻기 위해 자기 몸을 바치셨습니다. 하나님께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갈라디아서 1:4-5)

크리스천이라면 인생에서 단 한 번만이라도 말씀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집니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나 하나 말씀으로 산다고 세상이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회사, 동료, 친구. 복음이 없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면 복음으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됩니다. 선택에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만나는 사람을 갈아치웁니다. 신앙적인 대화가 가능한 사람만 남깁니다. 그 이외의 관계는 단절합니다. 대화하면서 은혜가 됩니다. 밖에서 어울리면서 유혹 받을 일도 없습니다.

교회 안에 머무는 게 익숙하고 편해집니다. 예배드리고 봉사하면서 보람을 느낍니다. 하나 둘 시작한 교회 활동이 늘어납니다. 목록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차례차례 지켜나가면서 마음에 안정감을 느낍니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온유해지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다, 위기를 만납니다. 삶이 바빠지면서 지키지 못한 항목이 늘어갑니다. 뭔가 잘못되지 않았나 불안합니다. 죄책감이 느껴집니다.

자신의 존재가치가 땅에 떨어집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목록을 차례차례 점검합니다. 처음부터 다시 지켜나갑니다. 안정감을 되찾습니다. 계속 반복합니다.

만일 세상과 단절하고 교회 안에서 목록을 작성하는 방식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겁니다. 교회 건물 안에 머물면서 목록을 의존한 채 신앙생활하면 우월감과 열등감의 양극단을 오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강한 의지로 목록을 지켜나가는 사람은 우월감에 사로잡힙니다. “크리스천이면 마땅히 이렇게 살아야지. 그렇게 살면서 무슨 크리천이라고….” 라는 말을 쉽게 내던집니다. 의기양양합니다. 반대로, 목록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열등감에 시달립니다. “나는 자격이 없어. 아직 끊지 못한 죄가 있어. 하나님 앞에 설 면목이 없어.” 자책합니다. 우월감, 열등감 모두 복음을 오해한 결과입니다.

바울은 복음이 복음인 이유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몸을 바치셨다.” 복음은 수준이나 성취가 아닙니다. 복음은 소식입니다. 소식을 들은 사람에게 요구되는 건 반응뿐입니다. 무심코 지나쳐버리는 사람이 있고, 진리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소식을 진리로 받아들인 모든 사람에게 평준화가 일어납니다.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모두 같은 가치를 가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희생해서 구해낸 고귀한 존재가 되는 겁니다. 최상급의 가치로 평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희생한 이상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해줄 행위 목록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바울은 거짓 교사들의 왜곡된 복음에 반박하기 위해 갈라디아서를 썼습니다. 인사말부터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해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이룬 구원에 그 어떤 것도 덧붙이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마저 부족해 다른 것을 덧붙인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되게 만드는 것이라 선포하는 겁니다.

거짓 교사들은 율법과 할례를 함께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미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니 보험 상품처럼 율법과 할례를 특약으로 가입하라는 겁니다. 바울은 계약서를 찢어버리라고 말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받는 구원에 다른 어떤 것을 덧붙인다면 그건 복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세상을 등지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만일 바울이 세상을 등진 사람이라면 우상으로 가득한 도시에 찾아가 복음을 전할 수 없었을 겁니다. 바울은 세상을 등지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중심에서 복음을 외쳤습니다. 바울이 말한 “ 이 악한 세상”은 정확히 번역하면 “현재의 이 악한 세대”입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바울의 관점은 “이미”와 “아직”입니다. 안경의 두 렌즈처럼 바울은 이미 오신 예수님과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대하며 살았습니다. 두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면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바울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아직”이라는 외눈박이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미 오신 예수님을 제 손으로 죽이고 여전히 메시아를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가 우리를 외눈박이 세상에서 구해내셨다고 말하는 겁니다.

이미 오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은 사람은 “현재의 이 악한 세대”에서 건져냄을 받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세대가 악하다고 말한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등지면 안 됩니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복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 속에서 아무리 작고 초라하게 느껴지는 당신이라도, 작고 초라한 믿음으로 부끄러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당신이라도, 괜찮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따뜻한 사랑으로 당신을 안아주실 겁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잊지 말고 기억해주세요. 당신을 위해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우리를 외눈박이 세상에서 구원해주신 예수님을 만나주세요. 당신과 나, 우리를 통해 온 세상에 예수님이 전해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