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내 뜻과 정성 모아서 날마다 기도합니다
괴롬과 죄가 있는 곳 나 비록 여기 살아도
빛나고 높은 저곳을 날마다 바라봅니다
의심의 안개 걷히고 근심의 구름 없는 곳
기쁘고 참된 평화가 거기만 있사옵니다
험하고 높은 이 길을 싸우며 나아갑니다
다시금 기도하오니 내 주여 인도하소서
내 주를 따라 올라가 저 높은 곳에 우뚝 서
영원한 복락 누리며 즐거운 노래 부르리
..
내 주여 내 발 붙드사 그곳에 서게 하소서
그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예전에 대학생들이 모이는 집회에 “저 높은 곳을 향하여”를 부른 적이 있었습니다. 말씀을 전해주시기 위해 오신 초청 강사께서 많은 집회를 다녀봤지만 청년들이 모이는 집회에 이 찬송가를 부른 것은 처음인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015 예배캠프 앨범에 수록된 이후에도 장례 예배 때 부르던 찬송을 일반 예배에서 부르니 새롭게 느껴진다고 말씀하시는 분의 리뷰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저 높은 곳을 향한다'는 말이 우리의 삶을 마칠 때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청년들에게는 이 고백이 자신과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찬송의 가사를 잘 살펴보면, '저 높은 곳을 향해 살아간다'라는 말의 의미가 조금 다르게 사용됩니다. 우리의 삶을 마칠 때로서의 '저 높은 곳'이라기 보다 오히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할까요?
시인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괴롬과 죄가 있고 근심의 구름이 있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분명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시인은 인정합니다. 맞아요,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서 실패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중에 더욱 우리를 낙심하게 만드는 사실은 이렇게 열심히 살아도 우리의 삶의 근심이 떠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문제를 풀면 또 다른 문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듯 늘 어렵기만 한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열심히 살아가는 삶, 그 안에서 종종 우리의 시선은 문제에 사로잡혀 우리가 어디로 향하고 있었는지 잊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치열함 속에 사로잡힌 우리의 가치관은 참된 믿음이 아닌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신앙과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문제 해결사 정도로 여기는 마음으로 우리의 신앙에 혼란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반면, 시인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저 높은 곳'인 하나님의 나라는 기쁘고 참된 평화가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를 향해 "나아간다"라는 이 찬송의 가사처럼 우리의 인생은 머무는 것이 아닌 나아가는 것입니다.
참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의 삶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이야기이지만, 우리의 영원은 이곳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눈을 하늘에 두지 못할 때, 우리는 '지금'을 전부로 삼은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 찬송이 삶을 마치는 순간에만 부르는 찬송이 아닌 이유는 '소망을 가지고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삶을 사는 것'이 모든 믿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어노인팅에서 케냐로 단기 선교를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팀이 케냐에 도착했는데 한 지체의 캐리어가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중간에 경유를 하면서 항공사의 실수로 캐리어가 옮겨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당연히 도착할 것이라고 믿었던 캐리어가 도착하지 않아서 그 지체는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요? 그런데 만약 나중에 제가 천국에 갔을 때 도착하지 않은 캐리어처럼 내가 살면서 준비한 모든 것이 천국에 가지고 갈 수 없는 것들뿐이라면 얼마나 당황스러울 것인가? 하는 질문이 마음에 찾아왔습니다.
어렸을 때 많이 부른 찬송 중에 이런 가사의 찬양이 있었습니다. “돈으로도 못 가요 하나님 나라 힘으로도 못 가요 하나님 나라 / 벼슬로도 못 가요 하나님 나라 지식으로 못 가요 하나님 나라 / 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이 찬송은 우리의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하는 찬송입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하나님 나라에서는 돈, 힘, 벼슬, 지식 등이 전혀 중요한 기능을 할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노래하고 있기도 합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돈이나 힘, 벼슬이나 지식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돈을 따라 힘을 따라, 영원하지 않은 것을 길잡이로 따라 살아가다가 마치 도착하지 않은 캐리어처럼 당황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미래에 가게 되는 곳만이 아닌 우리에게 임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예수님의 사역과 인격 그 한가운데에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가운데 임했습니다(눅 17:21).
우리가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며 그분을 따를 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가운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기쁘고 참된 평화는 먼 미래에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복락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성령을 통하여 우리 가운데에 함께 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외치는 이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진리를 붙들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마치 험하고 높은 길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싸우며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찬송의 고백처럼 날마다 기도하고 다시금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주여 내 발 붙드사 그곳에 서게 하소서.” 이것이 바로 우리의 기도가 됩니다. "주님, 오늘도 우리를 붙들어 주셔서 하나님의 나라 가운데 살아가게 하여주시옵소서. 땅을 바라보며 살지 않고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자신도 하나님의 나라를 오늘 누리고 있는가 질문하게 됩니다. 저 역시 아는 것과 실제로 살아가는 것의 사이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시 고백합니다. “다시금 기도하오니 내 주여 인도하소서. 내 주여 내 발 붙드사. 그곳에 서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