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스몰스텝

[스몰스텝 #9] 열심만으로 부족한 시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10년 만에 오랜 친구를 만났다. 중견 기업의 중국 법인장으로 6년간 일하다가 암이 발견돼 갑작스레 귀국한 친구였다. 다행히 수술은 잘 마쳤고 새로운 기업의 이사로 ‘바쁜 삶으로의 회귀’를 앞두고 있었다. 친구의 얼굴은 다행히도 밝았다.

경찰 공무원, 대학교에서 진로 상담을 하는 친구와 함께 넷이서 송년회로 만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무엇이 그렇게 바빠서 10년을 못 보았을까? 한창때를 함께한 친구 들이라 시간의 장벽 따위는 느낄 수 없었다. 결혼 후 첫 집들이를 했을 때의 멤버들이 고스란히 모인 셈이었고 아이들 나이도 비슷했다.

대화의 주제 역시 너무나 자연스럽게 공통의 고민으로 옮겨갔다. 70, 80까지 무엇을 하며 먹고 살 것인가. 한 친구는 진급에 실패하거나 포기하면 식물인간처럼 ‘연명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경찰 선배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경쟁을 위해 상도덕 따위는 무시하는 헤드헌팅계의 무서운 현실 이야기가 이어졌다. 부사장 자리까지 가기 위해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경쟁 앞에 선 친구의 얘기를 듣다보니 이런 의문이 들었다. ‘암이 발병할 정도로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온’ 친구에게 도대체 무엇을 더 바라는가. 그런 의문이 이야기가 이어지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대체 우리는 얼마나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 말이다.

각자 다 다른 행복

적지 않은 친구와 지인들이 한국을 떠났다. 그들이 선택한 곳은 대부분 호주나 캐나다, 뉴질랜드다. 대형 제약회사에서 영업 사원으로 일하면서 밤마다 술을 마시며 견디던 친구는 지금 캐나다에서 요리를 배우고 있다.

사업을 하던 교회 선배는 호주로 떠나 뒤늦게 신학을 공부하고 있고, 대기업 출신의 프로그래머인 지인은 온 가족이 함께 이민을 떠난 지 오래되었다. 그들이 얼마나 ‘성공’적인 삶을 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불행’해 보이지는 않았다.

SNS의 많은 글들이 다른 곳에서의 ‘다른 삶’을 말하며 사람들의 관심과 호응을 얻고 있다. 티브이 프로그램들은 북유럽 국가들에서 ‘행복의 비밀’을 캐기도 하고, 어떤 작가는 ‘한국이 싫은 이유’를 소설로 펴내기도 했다. 이렇듯 그냥 성공하는 삶이 아닌 다른 삶에 대한 욕구의 온도는 매우 높다.

[caption id="attachment_79535" align="alignnone" width="640"]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삶, 내가 만족하는 삶, 내가 책임지는 삶을 만들어가야 한다.[/caption]

40대가 되어서야 알았다. 20대까지의 삶의 방식으로는 더는 견뎌내기 힘들다는 것을.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삶이었다면 앞으로의 40년은 조금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우리 넷은 의견을 모았다.

그저 ‘잘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한 분야에서 ‘대체불가능한’ 특별한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친구는 없었다. 문제는 ‘So what’이다. 그래서 우리는 뭘 해야 하지?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떤 삶을 살라고 말해주어야 하지?

우리는 결국 답을 찾지 못한 채 10년 만의 송년회를 마치고 쓸쓸히 강남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미처 하지 못한 몇 가지 이야기들을 마음에 안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

다른 삶은 있다. 우리가 몰랐을 뿐이다. 그것은 수능 성적을 올리고 스펙을 쌓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삶의 방식이다. 다른 이들과 비슷한 삶이 아니라 ‘자기다운’ 삶을 지금이라도 고민해야 한다. 그것은 직장을 바꾸거나 직업을 바꾸는 이직이나 창업에 대한 고민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것은 삶의 방식에 관한 고민이다.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삶이어야 한다. 얼마나 더 많이 벌 것인가, 어떻게 하면 남에게 기죽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이 삶’을 자신이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의 방식과 그 선택에 대한 분명한 이유를 찾아야 한다.

자신만의 ‘삶의 철학’ 을 지녀야 하는 것이다.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삶, 내가 만족하는 삶, 내가 책임지는 삶을 만들어가야 한다.

[caption id="attachment_79536" align="alignnone" width="640"] 누구나 인정하는 한 가지 성공한 삶의 방식은 없다. 하지만꼭 필요한 한 가지는 바로 ‘나다운’ 삶에 대한 고민이다.[/caption]

그래서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미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골목 깊숙한 곳에서 마카롱을 팔며 일주일에 사흘만 일하는 친구들이 있다. 가방 하나를 만들어도 자신의 삶의 방식에 맞게 만드는 브랜드들이 이미 시장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대기업을 다니다가 일과 삶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 그 좋은 직장을 뛰쳐나오는 친구들이 적지 않다.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삶에서 실현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우리 아이들에게 주어야 할 가이드는 이런 삶의 방식인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삶을 살게 하는 ‘하나의 방식’은 없다. 누구나 인정하는 한 가지 성공한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선택엔 ‘정답’이 없다. 굳이 비유하자면 우리는 주관식 문제 앞에 서 있는 셈이다. 그 문제를 풀기 위해 필요한 한 가지는 다시 말하지만 ‘나다운’ 삶에 대한 고민이다. 그리고 자기다운 삶은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정답을 만들어가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