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ㆍ문화
김유비의 행복문답

사랑은 흔적을 남긴다

갈라디아서, 치유하는 말씀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은혜와 평안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1:3)

바울은 두 나라 언어로 인사합니다. 은혜는 헬라 방식의 인사이고 평안은 히브리 방식의 인사입니다. 쉽게 말하면, 영어와 국어로 인사한 겁니다.

“헬로 그리고 안녕, 여러분.” 청중을 배려한 인사 방식입니다.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면서 유대인이었습니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선택된 사도이니 두 나라의 언어를 통해 인사한 겁니다.

놀랍게도 바울의 인사에는 바울의 사상이 담겨있습니다. 은혜와 평안은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복음의 전제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가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그 누구도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습니다. 값없이 거저 받았습니다. 아무도 자신의 공로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은 평안합니다. 불안하지 않습니다. 구원에 자신의 노력이 먼지만큼이라도 섞여 있는 사람은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소한 실수 하나, 작은 죄 하나로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은 실수하더라도, 다시 죄를 짓더라도 하나님 앞에 엎드리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집니다. 구원은 상실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우리를 선택하셨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당신은 안전합니다. 이것이 은혜로 말미암은 평안입니다.

온전한 복음은 은혜와 평안을 누리게 합니다. 그러나, 왜곡된 복음은 반대입니다. 은혜 대신 노력, 평안 대신 불안을 말합니다. 노력이 부족하면 하나님께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립니다. 노력해서 불안하고, 불안해서 노력합니다. 파괴적인 패턴에 사로잡혀 자신을 소진합니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결과로 증명하려고 합니다. 거짓입니다. 복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그의 자녀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책임지고 돌보십니다. 죄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도망칠지라도 하나님은 끝까지 우리를 추격하십니다.

하나님은 길가에 버려진 채 추위에 떨며 울고 있는 우리를 찾아내십니다. 우리를 따뜻하게 안아주시고 은혜의 담요로 덮어주십니다. 얼어붙은 손을 호호 불어주십니다. 우리가 체온을 회복하고 따스한 품에 안겨 잠들 때까지 하나님은 자장가를 불러주십니다.

은혜의 하나님은 우리를 평안으로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온전한 복음의 능력입니다.

바울은 오랫동안 노력과 불안으로 고통받았습니다. 율법을 지키기 위한 노력, 율법을 전부 지키지 못한다는 불안, 그 사이에서 그는 종교적 열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의 잘못된 열정은 세상에 갓 태어난 교회를 후려치는 채찍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그의 차디찬 노력은 은혜로 녹아버렸습니다. 불안은 평안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이루신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바울의 가슴에 선명한 흔적을 남겼습니다. 은혜와 평안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뿐만 아니라 다른 편지에서도 은혜와 평안이라는 말로 첫인사를 합니다. 그리스도가 남긴 흔적이 그의 가슴을 타고 편지에 흘러나왔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바울이 전한 편지가 성도들에게 전해지는 상상을 해봅니다. 불안하고 초조한 표정으로 삼삼오오 모여 편지를 전해 듣는 성도들, 여기저기 옅은 미소가 번지다 활짝 웃으며 서로를 껴안고 격려하는 성도들을 말입니다.

나의 상상은 멈추지 않습니다. 이 글을 읽으며 미소를 짓는 당신의 얼굴을 그려봅니다. 복음이 당신을 미소 짓게 한다면 나는 내 역할을 다한 겁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 은혜와 평안의 복음이 당신과 나에게 온전히 전해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