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사람인가?’ 누가 이렇게 물어오면 뭐라고 설명하기가 힘듭니다. 저도 제 자신을 모른다고 해야 정직할 것입니다.
“내 주위의 사람들은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할까?”만약 이런 질문을 한다면 모두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저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평소 저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평가를 들었을 때, 저는 ‘그건 내가 아니야’라고 동의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때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내 행동만 보고 어떻게 나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겠는가?’‘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나를 알겠어!’
그런데 한번은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다가 내 행동을 보고 내리는 주위 사람들의 평가가 나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부터 23절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고 사는지 주목하신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24절부터 27절에서도 예수님이 반석 위에 지은 집 비유를 통해 인생의 기초가 반석이냐 모래냐 하는 기준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느냐 아니냐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행함을 보시고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판단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스스로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사실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가족이나 친구나 동료들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지도 모릅니다. 주위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보기 바랍니다. 그들의 말이 우리 자신의 정확한 모습일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그대로 행하지 않으면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 1:22).
행함이 따르지 않는다면 은혜받은 것도 믿은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행동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정말 마음에 있다면 행동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음을 알았습니다.
“믿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아도 행동을 보면 “어디 믿는 데가 있나 봐”라고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사랑합니다” 말하지 않아도 “사랑하나 봐”라고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갈망합니다” 하지 않아도 갈망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행동으로 고백하는 법을 훈련받지 못하면 머리로만 예수님을 믿는 무기력한 신자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심장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까? 꼭 꺼내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주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우리는 예수님의 임재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바로 우리가 주님을 믿고 산다는 것을 “예수님, 나의 주님!”,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며 행동으로 고백해봅시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 야고보서 2장 14절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 야고보서 2장 26절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 요한일서 3장 18절
† 기도
말씀을 듣기만하도 행동하지 않았음을 고백하오니 용서하여주시옵소서.
행함으로 건강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 적용과 결단
당신은 행함이 있는 믿음의 소유자입니까?
말씀을 듣고 행동하는 자가 되기를 결단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