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스몰스텝

[스몰 스텝 #8] 저마다 원하는 빛나는 삶이 있다

우리 집에는 1년에 4번 손님이 온다. 처음엔 행사 같았으나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이 손님을 처음 만난 것은 ‘가정 체험’이라는 교회 행사에서였다. 보육원 아이를 초대해 일주일간 그야말로 ‘가정’을 ‘체험’하는 행사였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만난 손님이 이제는 곧 고등학생이 된다. 올해는 거대한 캐리어에 짐을 싣고 와 한 달 동안 지내다 갔다. 떠나는 날 백화점에 들러 신발을 사주었다. 꼼꼼히 신발을 고르던 아이가 대뜸 돈을 벌면 이모(이 손님 은 아내를 이렇게 부른다)에게 구찌를 선물하겠다고 했다.

문득 아내가 그동안 벌인 몇 가지 사고들이 떠올랐다. 굳이 표현하자면 빛나는 사고들이다.

아내는 누군가를 도울 때 얼굴에서 빛이 났다. 피로를 빨리 느끼는 편인데도 그런 일을 할 때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를 돕는 데서 오는 보람은 일상적인 보람과는 조금 달라 보였다. 그건 마치 내가 좋아하는 일에 빠져 있을 때의 몰입과 비슷했다.

의무감이나 책임감 때문이 아니라 그 과정 자체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그 마음을 상대방이 먼저 알아챘다. 여전히 나와는 거리가 있는 이 손님도 아내만큼은 제 엄마처럼 편하게 대하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나는 그런 모습들이 내내 신기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무엇이 아내에게 그런 마음과 에너지를 주는 것일까.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그냥 좋아서라고 했다. 마음이 끌린다고 했다.

[caption id="attachment_78948" align="alignnone" width="640"] 아내는 '엄마' 역할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도 그렇지만 다른 손님들에게도 그렇단다.[/caption]

사람마다 끌리는 게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매우 피곤한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에너지를 얻는 일이 된다. 여러 명을 동시에 만나면 쉽게 피곤해지는 나와 다르게 누군가는 만남과 수다 그 자체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누군가에게는 번지 점프가 흥분되는 일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상상도 못할 공포를 준다. 그래서 자신에게 에너지를 주는, 마음이 끌리는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아내에게는 그것이 사회에서 외면받고 소외당하는 누군가와 교감을 나누는 일이었다. 그것이 누군가의 이목이나 책임감 때문 이었다면 10년 동안 변함없이 한 아이를 보살피는 것은 불가능 했을 것이다. 단순한 동정심이었다면 상대방이 그 진심을 먼저 알아차리고 외면했을 것이다. 그렇게 편하게 한 달 동안 쉬러 올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caption id="attachment_79402" align="aligncenter" width="640"] 광명역에서 발견후 입양된 루이 혹은 봉구, 우리 집에 온 후 새끼 두 마리의 아빠가 되었다.[/caption]

사고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내는 버림받은 길고양이 두 마리를 입양했다. 집 안의 소파와 의자들은 고양이들이 할퀴어 남아나지 않았고, 뒤처리 작업도 만만치 않았다. 깨끗하고 깔끔 한 환경을 좋아하는 내게 뜯어진 벽지와 고양이 냄새는 최대치 의 스트레스를 주었다.

하지만 그렇게 버림받은 존재들과마음 을 열고 나누는 교감이 아내에게 어떤 위로를 주는지 아는 이상 투덜거리면서도 차마 쫓아낼 수가 없다. 나 역시 내게 힘을 주는 삶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아내의 삶도 존중하는 것이다.

나다운 삶이란 어쩌면 타인의 ‘그다운 삶’을 돕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고양이 똥을 치우고 모래를 채우고 찢어진 소파에 테이프를 붙인다. 다행히 이 일이 조금씩 쉬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