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동행일기를 쓰기 시작하였을 때, 한 신문기자가 인터뷰를 마치면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왔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행복하십니까?”
참으로 당황할 만한 질문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 때, 편안한 마음으로 “예, 주님으로 행복합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렇게 말하는 저 자신에 대하여 놀랐습니다. 제 안에 행복의 이유가 분명해졌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도 풍요한 삶을 꿈꾸었고, 성공한 목사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 길을 가면서 저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과중한 스트레스로 내면은 무너져 갔습니다.
그 때, “목사님은 행복하십니까?” 하는 질문을 받았다면 분명하게 대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행복의 이유가 불분명하였고 또 잘못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임하신 주님을 알게 되었고,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뜨이고, 성경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역사를 분별하게 되면서 진정한 행복을 경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제 안에서부터 진심으로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행복의 이유를 발견한 것입니다.
1800년대에 수많은 고아를 돌보았던 조지뮬러가 어느 날 일기에 “오늘 아침에 사랑하는 아내에게 짜증을 내서 주님을 크게 욕되게 했다" 그래서 그는 “주님 앞에 무릎 꿇고 내게 이런 아내를 주신 그 분을 찬양했다” 고 썼습니다.
그는 자신 안에 일어나는 불편한 심기가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아내에게 상처가 되었음을 솔직히 인정했습니다.
이처럼 뮐러는 고아들을 먹이고 입혀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 때문에, 스트레스에 눌려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자신의 건강도 나빠지는 일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것을 극복했음을 일기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이전 어느 때보다도 분명히 깨닫는다. 내가 날마다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힘써야 할 큰 일은 내 영혼을 주 안에서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내가 관심을 두어야 할 첫 번째는 주님을 얼마나 섬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내 속사람이 행복한 상태에 이르느냐는 것이다…그래서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데 전념하는 것이다”
제가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면서 얻은 축복은 이전 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게 어려움이 사라지고 해야 할 일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실제로는 제가 해야 할 일은 이전 보다 훨씬 많아졌고, 사람들에게 더 많이 노출되었고, 감당해야 할 책임도 훨씬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행복감은 놀랍게 깊어졌습니다. 이런 행복한 느낌은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계심이 믿어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행복한 마음이 점점 더 분명해졌습니다.
환경과 형편과 상관없이 한결같음이 놀라왔습니다.
사람들이 불행한 것은 온갖 세상의 소리만 듣고 살기 때문입니다. 대중문화는 너무 가볍고 요란하기만 하고 육신의 만족만 추구함으로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기 때문에 기쁨의 근원이신 분의 말씀을 들을 때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요 10:27)고 말씀하셨습니다.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되면 주님의 말씀이 즐거워집니다. 그것이 행복하게 사는 열쇠입니다.
“저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 행복합니다. 주님의 음성 덕분에 행복합니다”라고 했던 아우구스투스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