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스몰스텝

[스몰스텝 #06] 걸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가볍게 시작한 퇴근길 산책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탄천을 가로지르는 넓은 다리에서 바라보는 타워팰리스의 야경은 한동안 멍하니 서 있게 하기에 충 분했다. 여유롭게 30분을 걸어 집에 도착하면 알게 모르게 밴 땀 탓에 두 배로 상쾌하게 샤워를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보다 늦은 퇴근 탓에 배가 고파 마을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허기를 채우고 나니 문득 허전한 기분이 밀려왔다. 가벼운 복장으로 집을 나섰다. 그리고 동네를 크게 돌아 20분을 걸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산책이 어느새 내 작은 습관으로 자리 잡게 되었음을. 아주 늦게 퇴근한 날엔 새벽에도 밤길을 걸었다. 퇴근길에 다 듣지 못한 팟캐스트를 듣거나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여름에 접어들 무렵, 아내가 산책길에 동행했다. 자연스럽게 딸이 뒤를 따라나섰다.

가족과 동네 마트를 가던 길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목적이 없기에 발걸음은 여유로웠고 일상의 대화들이 자연스레 산책길 을 채웠다. 아내는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의 보너스로 카페를 여는 지인 얘기를 꺼냈고, 딸은 즐겨 보는 웹툰의 남자 주인공 얘기로 수다를 떨었다.

좀처럼 자기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 아들도 산책에 동행하곤 했다. 그건 또 다른 즐거운 변화였다. 집에 같이 있어도 좀처럼 대화를 나눌 여유가 없는 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산책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냈다. 산책 중에는 티브이도 스마트폰도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에 대화밖에 할 게 없었다. 나는 그 당연한 일이 내심 신기했다.

산책의 재발견

산책은 또 다른 산책을 불렀다. 당시 다니던 회사 옆에는 서울 숲 공원이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나면 30분 정도가 비게 마련인데 그 시간에 동료들과 수다를 떨 때도 있었지만 밀린 일을 서둘러 시작할 때도 적지 않았다.

나는 그 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누리기로 하고 산책을 시작했다. 서울숲의 한 구역을 크게 돌 면 대략 20분이 걸렸다. 다양한 나무들로 가득한 공원은 운치와 정경을 선물했다. 멀찌감치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일도 즐거웠다.

5월에는 신혼부부들의 웨딩 촬영이 매일같이 이어졌고 노란색 유치원복을 입은 꼬마들이 줄을 지어 지나가는 일도 다반사였다. 일기예보 촬영을 위해 방송 차량과 사람들이 몰려 든 날도 있었고, 돗자리를 깔고 망중한을 즐기는 커플들은 항상 볼 수 있었다.

그 길을 걸었다. 풀리지 않는 기획안을 두고 끙끙대기도 했고, 머리를 떠나지 않는 사소한 고민을 털어내려고 걷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효과가 있었다. 한참을 걷다 보면 복잡한 일들이 어느 순간 단순해지곤 했다.

흙길의 감촉과 스치는 바람이 머릿속의 이런저런 고민들을 털어내주었다. 가끔은 벤치에 앉아 그 시간 자체를 즐기곤 했다. 평소 같으면 어두운 사무실에 앉아 풀리지 않는 생각의 고리를 붙잡고 허둥대고 있을 시간이었다.

그때부터였다. 매일 같은 곳을 산책하던 나는 길이 시작되는 포인트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양 갈래로 길게 늘어진 숲속 산책로의 풍경을 스마트폰에 담았다. 1년이 지나니 그 속에 사계절의 변화가 고스란히 담겼다.

내친 김에 다른 정경들도 찍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비둘기, 어느 날은 꿩(처럼 생겼으나 확신할 수 없는), 1년에 한두 번은 바로 앞을 걸어가는 까마귀 사진까지 찍었다. 주변을 배회하는 길고양이도 있었다.

어느 날부터는 나무의 이름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주로 다니는 산책길에 있는 나무가 ‘팽나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늘로 곧게 뻗은 멋진 나무의 이름은 ‘스트로브 잣나무’였다. 그 옆에 흐드러지게 핀 조그만 국화 같은 풀꽃은 ‘개망초’였다.

행복한 중독

궁금함이 방법을 만들어냈다. 집에 꽂아만 두었던 식물도감과 나무도감을 꺼내들었고, 꽃 검색 서비스로 풀꽃 이름들을 하나씩 검색했다. 신기한 것은 그것의 이름을 알게 된 순간 그것들을 대하는 내 자세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모두 ‘나무’이거나 ‘꽃’이 거나 ‘새’이거나 하던 세상이 하나님이 주신 저마다의 이름을 가진 디테일한 세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애정이 생겨났다.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자 그들의 이야기가 함께 따라왔다. 왜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그것들이 다른 것들과 어떻게 다른지,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우리 곁에 남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산책은 일상을 바라보는 나의 좁은 눈을 넓게 열어주었다. 그것은 한두 번의 산책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잠깐이지만 매일 반복하는 산책이 이 세상의 미묘한 차이를 발견하는 눈을 열어주었다.

비슷해 보이는 나무들이 실은 조금씩 다른 색의 가지와 이파리와 열매를 갖고 있었다. 산책로는 계절마다 조금씩 변모했다. 그 변화를 인지하는 즐거움은 자칫하면 사무실의 한 평 공간에 갇힐 뻔한 내 생각의 물꼬를 조금씩 터주었다. 나는 그렇게 산책에 중독되기 시작했다. 그건 여느 중독과는 다른 행복한 중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