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할머니께서는 버스에 타고 자리에 앉으시면 일단 기도부터 하신 것이 기억납니다. 그때 아마 차량의 안전 운행과 목적지까지 여행을 잘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하셨을 텐데, 그 모습이 정말 경건하게 보였습니다. 한 후배가 자동차를 타고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안전 운전을 기원하는 기도를 했으리라고 짐작이 되는데 그 모습 역시 경건하게 보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가 생활화된, 쉬지 않고 기도하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때나 어디서나 눈을 감고 고개를 숙여 기도해야만 경건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어디서나 소리 내어 기도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길모퉁이에 서서 사람들에게 과시하면서 기도했던 바리새인들을 질책했던 예수님의 교훈을 기억해야 합니다(마 6:5).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습니다. 회교도들은 어디서든지 기도할 시간이 되면 자리를 펴고 메카를 향해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데 주님은 우리에게 그런 방식의 기도를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언제 어디서든지 기회가 주어지면 주님을 생각하며 묵상하는 것은 의미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지만 바빠서 자주 보지 못할지라도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바로 그런 감정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쉬지 않는 기도 생활과 비슷합니다. 또 기회가 된다면 기도의 자세를 갖추고 기도하는 것도 바람직합니다. 우리가 일하면서도 늘 기도하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체험하면서 삽시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때나 어디서나 눈을 감고 고개를 숙여 기도해야만 경건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어디서나 소리 내어 기도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길모퉁이에 서서 사람들에게 과시하면서 기도했던 바리새인들을 질책했던 예수님의 교훈을 기억해야 합니다(마 6:5).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습니다. 회교도들은 어디서든지 기도할 시간이 되면 자리를 펴고 메카를 향해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데 주님은 우리에게 그런 방식의 기도를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언제 어디서든지 기회가 주어지면 주님을 생각하며 묵상하는 것은 의미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지만 바빠서 자주 보지 못할지라도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바로 그런 감정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쉬지 않는 기도 생활과 비슷합니다. 또 기회가 된다면 기도의 자세를 갖추고 기도하는 것도 바람직합니다. 우리가 일하면서도 늘 기도하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체험하면서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