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에서 기도에 대해서 강조하신 예수님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응답받는 것이 너무도 당연함을 가르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질문이라기보다는 너무도 당연함을 강조하는 수사법을 사용하고 계신 듯합니다. 좋은 것을 달라는 자식에게 나쁘고 해로운 것을 줄 부모가 없다는 인륜은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할 때 그 좋은 것을 그대로 받는다는 당위성의 근거를 제공해줍니다. 그러니 우리는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좋은 것을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공급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구하는 자녀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기본적인 부자 관계의 미덕만큼도 못한 모습을 보이시는 것이라는 비교를 예수님이 직접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 교훈의 결론입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응답해 주시니 감사하라는 결론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12절). 이 의외의 결론을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받은 좋은 것은 나 혼자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대접하라는 뜻으로 읽어보면 어떨까요? 나를 위한 기도만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기도가 더욱 필요합니다!
질문이라기보다는 너무도 당연함을 강조하는 수사법을 사용하고 계신 듯합니다. 좋은 것을 달라는 자식에게 나쁘고 해로운 것을 줄 부모가 없다는 인륜은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할 때 그 좋은 것을 그대로 받는다는 당위성의 근거를 제공해줍니다. 그러니 우리는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좋은 것을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공급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구하는 자녀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기본적인 부자 관계의 미덕만큼도 못한 모습을 보이시는 것이라는 비교를 예수님이 직접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 교훈의 결론입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응답해 주시니 감사하라는 결론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12절). 이 의외의 결론을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받은 좋은 것은 나 혼자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대접하라는 뜻으로 읽어보면 어떨까요? 나를 위한 기도만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기도가 더욱 필요합니다!